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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지영의 문화난장

66세 인순이 도전 "언제든 하이힐 신을 준비"…2030이 반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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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지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이지영 논설위원

또 언니의 귀환이다. 1957년생 66세 인순이와 이은미(57)·신효범(57)·박미경(58) 등 ‘디바’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소문난 보컬리스트들이 ‘걸그룹’으로 뭉쳤다. 지난 10월 27일 첫 방송한 KBS-2TV ‘골든걸스’에서 이들은 JYP 수장 박진영이 프로듀싱하는 4인조 그룹 골든걸스로 데뷔했다. 평균연령 59.5세. 희자매로 데뷔했던 인순이를 제외하면 그룹 활동도 처음이다. 이들은 지난 8월부터 경기도 남양주의 숙소에서 합숙까지 한다. 지난 1일 첫 곡 ‘원 라스트 타임’의 음원을 발표했고, 음악방송 ‘뮤직뱅크’(KBS2)에도 출연했다.

활동 경력 도합 155년인 가수 이은미·인순이·박미경·신효범(왼쪽부터)이 걸그룹 골든걸스를 결성,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쇼케이스 무대. [연합뉴스]

활동 경력 도합 155년인 가수 이은미·인순이·박미경·신효범(왼쪽부터)이 걸그룹 골든걸스를 결성,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쇼케이스 무대. [연합뉴스]

현재 5회까지 방송된 ‘골든걸스’는 시청률은 3∼5% 사이를 오가는 수준이지만, 화제성은 크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12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 순위에서 ‘미우새’(미운우리새끼ㆍSBS)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유튜브에 올라온 방송 영상 조회수는 최대 190만 회를 넘어간다. 올 상반기 tvN ‘댄스가수유랑단’의 김완선에 이은 또 한 번의 언니 바람이다. ‘댄스가수 유랑단’을 통해 MZ세대에까지 존재감을 각인시킨 54세 김완선은 지난달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단독 콘서트도 펼쳤다. 7일 베스트앨범 발매에 이어 오는 16일엔 부산에서도 단독콘서트를 연다.

이은미·신효범·박미경과 4인조

걸그룹 골든걸스로 신곡 발표

압도적 실력, 자기관리 능력에

'번아웃' 2030 "에너지 얻는다"

한 세대 전 인기를 끌었던 5060 여성가수들의 잇따른 컴백의 배경엔 방송사들의 시청률 계산이 있다. 1990년대 X세대 문화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해 TV의 주시청층인 장년층 여성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파장이 단순한 추억팔이 이상이다. 이들의 자식뻘인 2030 젊은 층까지 새로운 팬으로 포섭되는 양상이다.

지난 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라이브플라자에서 열린 골든걸스 게릴라 콘서트에도 젊은 팬들이 몰려왔다. 선착순 100명 안에 들지 못해 콘서트장 입장이 막힌 수백 명의 팬이 출입저지선 바깥에서 까치발을 들고 45분가량 이어진 콘서트를 지켜봤다. 이 중 자신을 취업준비생이라고 밝힌 한 20대 여성은 “우리 세대 가수가 아니어서 잘 알지는 못했다. 근데 노래 실력이 정말 대단하다. 이들의 에너지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이날 골든걸스 네 멤버는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등장, 폭발적인 가창력을 드러냈다. 반백의 머리색과 군살 하나 없는 몸선이 비현실적인 조화를 이뤘다.

이나미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번아웃 세대’인 2030 세대에게 이들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주목했다. “번아웃 된 청년이 너무 많은 시대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곤 했던 2030 청년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연예인들을 보면서 비전을 얻는다. ‘아, 우리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미래가 있구나’란 자각이다.”

5060 여성 가수들이 젊은 시절 처했던 사회 환경도 극한 경쟁에 치인 MZ 세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요인이다.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없던 시절, 연예인의 위상이 지금 같지 않았다. 출연료를 떼이기도 예사였다. 더욱이 여성은 방송에서 주변인에 머물던 시절이었고, 이들도 그랬다. 문정희 시인이 시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1997)에서 묘사한 “개밥에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그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등이 1990년대까지 대다수 여성이 처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압도적인 실력으로 살아남았다. '미친 가창력'으로 불리며 전성기를 지낸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건재했다. 대중의 눈에서 사라졌던 동안에도 꾸준히 자기 관리를 해온 진정성 역시 감동 포인트다.

방송에서 인순이는 “나는 언제든 하이힐을 신고 무대에 설 준비를 한다. 그래서 운동을 하고 관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37년간 야식을 제한해 1986년 데뷔 때 체중 45㎏에서 1㎏밖에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는 김완선의 고백과 결이 같다. “진짜 자기 관리의 끝판왕. 나태했던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댓글이 이어진다.

흘러간 옛 가수가 아닌 동시대 아티스트로서의 도전정신 역시 이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히트곡 재탕이나 인기곡 커버에 머물지 않고 신곡에 도전했다. 요즘 창법에 맞춰 노래할 때 입을 작게 벌리는 연습을 하고, 아이돌 안무도 소화해낸다. 골든걸스의 데뷔곡 ‘원 라스트 타임’의 가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안 해본 도전은 다 실패야. 이렇게 꿈을 버릴 수는 없어. 내 안의 모든 걸 다 걸어봐. 후회 없이 웃을 수 있게.”
 MZ세대 마음을 사는 진짜 어른의 조건을 언니들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