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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억 전세사기 터진뒤 "보증취소"…'뒷북 HUG'도 책임 묻는다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은 지난달 15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일방적인 보증보험 취소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등은 지난달 15일 오전 부산 남구 문현동 부산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일방적인 보증보험 취소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연합뉴스

계약 기간이 끝난 뒤에도 임차인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임대사업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100명 넘는 피해자가 돌려받지 못한 돈은 200억원에 가깝다. 이 업자가 범행 과정에서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허위 서류를 내 임대차보증보험에 가입하고, 보험에 든 걸 내세워 피해자를 더 쉽게 속인 것도 드러났다. 일부 피해자는 허그(HUG)에도 책임이 있다며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초년생 149명에 183억 등친 40대 구속

부산 남부경찰서는 임차인 149명의 임대차 보증금 183억원을 돌려주지 않고 가로챈 혐의(사기)로 40대 남성 A씨를 구속했다고 6일 밝혔다. 부산에 오피스텔 등 건물 11개(190호실)를 소유한 A씨는 2019년부터 임차인들과 임대차 계약을 맺은 뒤 계약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비정상적인 갭투자 등을 통해 건물을 마련한 A씨가 주로 20, 30대 사회초년생과 전세 계약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통상 계약 기간은 2년, 보증금 규모는 1억5000만원 안팎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많은 중대 사건인 데다 도주 우려 등이 인정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가짜 계약서 36건, HUG도 속였다  

전형적인 전세 사기 사건이지만, A씨가 범행 과정에서 가짜 계약서를 제출하고 허그까지 속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을 줬다. 임대차 사업자인 A씨에겐 임대보증금보증 가입 의무가 있다. 임대인 부도 등 ‘보증금 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허그가 보증금 지급을 보증하는 제도다. 허그는 가입 심사 때 임대물건 부채비율을 따진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경찰과 허그 설명을 종합하면 A씨는 물건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허그에 보증금 액수를 낮춰 쓴 계약서를 냈다. 가령 실제로는 보증금 100만원에 계약했지만, 50만원으로 적힌 계약서를 내면 심사 때 해당 물건의 부채비율이 그만큼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A씨는 이 같은 수법으로 심사를 통과하고 허그 보증보험에 가입했다. 상당수 임차인은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허그 보증 가입 물건’인 점을 믿고 A씨와 계약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낸 허위 계약서가 적어도 36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범 등을 수사한 뒤 보증보험 심사 등 제도적 허점이 확인되면 개선을 건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HUG 뒷북 취소에 피해자는 변호사 샀다  

A씨 사건을 계기로 허그는 임대인이 제출한 계약서 내용을 임차인에게도 확인하고 있다. 허그 관계자는 “임대인이 내는 서류는 사문서여서 진위를 판별하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허그는 뒤늦게 전수조사를 통해 A씨 앞으로 된 보증 98건(보증액 125억원)을 취소했다. 이는 2020년 8월 이후 허그가 보증 취소한 전체 물량(111건)의 88.3%에 달한다. A씨와 계약한 임차인들은 지난 8월 말쯤 허그가 발송한 ‘임대보증금보증 가입취소(거절) 안내문’을 받고서야 속은 사실을 알았다.

A씨 임차인인 B씨가 지난 8월허그로부터 받은 임대보증금보증 취소 안내문. 사진 B씨

A씨 임차인인 B씨가 지난 8월허그로부터 받은 임대보증금보증 취소 안내문. 사진 B씨

이에 피해자들은 허그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가짜 서류에 당해 보증보험을 발급한 허그에도 피해를 키운 책임이 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이들은 허그의 ‘보증 일괄 취소’ 문제도 심각하다고 본다. A씨가 허그에 낸 계약서 중 일부는 보증금을 낮춰 쓴 허위 문서였고, 나머지는 정상적인 계약서였다. 하지만 허그는 시행세칙 등을 근거로 정상 계약서가 제출된 세대의 보증도 모두 취소했다.

피해자 B씨는 “정상적인 계약서가 제출돼 보험에 가입된 세대에게는 허그가 (보증금 반환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처지의 임차인 17명과 함께 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맡은 큰바다법률사무소 제해성 대표 변호사는 “임대인이 제출한 서류의 진위를 확인할 의무ㆍ권한 등이 없다는 허그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업무 태만으로 생긴 문제를 임차인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라며 “조만간 소송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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