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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트럼프 독주에 불붙은 ‘재선 저지론’…'자객 출마' 저울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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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앤케니의 한 위스키 바에서 열린 지지자들과의 모임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 앤케니의 한 위스키 바에서 열린 지지자들과의 모임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전망 속에 “트럼프 2기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워싱턴 정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내 경선 주자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주 구도가 공고한 데다 최근 민주당 대선후보로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가 커져가는 가운데 민주당은 물론 트럼프가 속한 공화당에서도 그의 독주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5일(현지시간)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민주당을 지지해 온 비즈니스 전문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의 공동창업자 리드 호프먼은 최근 공화당 대선 경선 주자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슈퍼팩(Super PACㆍ정치활동위원회)에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를 기부했다.

2016년과 2020년 대선 때 각각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지지한 호프먼이 공화당 경선 주자 지원에 나선 이유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적을 이용해 또 다른 적을 꺾는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내지는 ‘차도살인’(借刀殺人ㆍ제3자를 이용해 적을 제압함) 전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헤일리, 바이든과 대결서 우세’ 결과 나와

공화당 경선전에서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와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헤일리 전 주지사는 고공비행 중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지지율 격차는 여전히 크지만 최근 분위기가 상승세다.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한 1대1 대결에서 우세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본선 경쟁력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니키 헤일리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지난달 11월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2024 미 대선 공화당 경선 주자 3차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니키 헤일리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지난달 11월 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공연예술센터에서 열린 ‘2024 미 대선 공화당 경선 주자 3차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공개된 메신저ㆍ해리스 여론조사 결과 헤일리 전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가상 양자대결에서 41% 대 37%로 4%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바이든 대통령과의 양자 대결에서 47% 대 40%로 우세였지만, 디샌티스 주지사는 40% 대 41%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밀리는 것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헤일리 전 주지사와 대조를 이뤘다.

리즈 체니 “트럼프 백악관 재입성 막겠다”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을 막자는 목소리는 공화당 일각에서도 공개적으로 나온다.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딸인 리즈 체니 전 공화당 하원의원은 이날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통령직 복귀를 막기 위해 제3당의 독자적 대선 후보로 출마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려 ‘자객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다.

2020년 대선, 그리고 트럼프 추종주의자들이 일으킨 2021년 1ㆍ6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를 거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결별하고 ‘반(反)트럼프’ 대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체니 전 하원의원은 “트럼프가 공화당을 계속 장악한 결과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WP에 말했다.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대담 행사에 참석한 리즈 체니 전 미 연방 하원의원. AP=연합뉴스

지난 6월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 대담 행사에 참석한 리즈 체니 전 미 연방 하원의원. AP=연합뉴스

체니 전 하원의원이 제3후보로 출마할 경우 오히려 바이든 대통령 표를 잠식해 역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WP 칼럼니스트 캐런 투멀티는 “제3의 후보가 바이든 승리 가능성을 잠식할 수 있을 만큼 박빙인 경합주가 적어도 6곳이 있다. 출마 가능성을 높여 최근 펴낸 그녀의 신간(『맹세와 명예: 회고와 경고』)을 많이 팔려고 한 것일 뿐이기를 바란다”며 출마를 반대하는 칼럼을 이날 실었다.

체니 전 하원의원은 이런 우려도 알고 있다며 대선 출마를 포기할 경우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년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ㆍ하원 선거에서 친트럼프 후보들의 원내 입성을 막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도 했다.

미 월가의 일부 큰손들 사이에서도 ‘트럼프 집권 2기’를 막기 위해 헤일리 전 주지사를 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지난달 말 월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민주당 기부자들을 향해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헤일리 전 주지사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좌충우돌식 언행으로 경제 불확실성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을 받아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을 막으려면 헤일리 전 지사 후원에 민주당 지지자들도 힘을 보태라는 뜻이다.

호프먼이 헤일리 전 주지사에 25만 달러를 기부한 것도 다이먼 회장 발언이 있은 뒤였다. 공화당에 막대한 후원금을 대 온 큰손 찰스 코크가 이끄는 정치후원단체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ㆍAFP)도 지난달 28일 ‘헤일리 지지’ 선언을 했다.

바이든 “트럼프 출마 없었다면 나도 확신 못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마치고 워싱턴 DC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를 마치고 워싱턴 DC 백악관으로 돌아오면서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최근 차기 대선 후보 및 국정수행 지지율 조사 등에서 고전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도전의 명분을 ‘트럼프 재선 저지’ 때문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매사추세츠주에서 열린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만약 트럼프가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내가 출마했을 거라는 확신을 못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가 승리하게 놔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대선 본선 경쟁력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밀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민주당 내 일부에서 후보 교체론까지 나오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재집권 저지를 앞세워 출마 명분을 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금씩 커지는 ‘트럼프 시즌2’ 가능성이 한반도 안보의 예측 불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날 미 버지니아주 미들버그 한 리조트에서 최종현학술원이 주최한 ‘2023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서 박인국 학술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한국과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보다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해서 한반도 안보 지형에 예측 불허의 불안감을 더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을 철수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트라우마’는 많은 한국인들의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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