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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주방장 상주? 편의점서 끼니 때운다"…호화 실버타운 뭔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019년 입주를 시작한 동백 스프링카운티자이는 1300여세대의 대단지 민간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이다. 대형병원과 연계한 최첨단 의료 서비스와 영화관·노래방 등 각종 편의시설을 홍보하며 분양에 나섰다. 그러나 분양을 허가해준 용인시는 한동안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월 30식을 ‘의무식’으로 정해 그만큼 비용을 내야하는데, 가격에 비해 식사가 부실하며 편의 시설도 광고처럼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일부 입주민 사이에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용인시 측은 “일부 입주민들이 노인복지주택 설치 신고를 취하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지만 지난달 시가 최종 승소한 상태다. 의무식 관련 민원도 많이 잦아들었다”고 설명했지만, 소송을 낸 주민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2019년 입주한 경기도 용인시 노인복지주택 동백스프링카운티자이. 연세세브란스병원을 끼고 있고, 1300세대가 넘는 대단지에 '자이'라는 브랜드까지 갖춰 큰 과심을 받았다. [GS건설 홍보영상 캡처]

2019년 입주한 경기도 용인시 노인복지주택 동백스프링카운티자이. 연세세브란스병원을 끼고 있고, 1300세대가 넘는 대단지에 '자이'라는 브랜드까지 갖춰 큰 과심을 받았다. [GS건설 홍보영상 캡처]

“호텔 주방장 상주” 초호화 시설 광고했는데…“편의점서 끼니 때워”

실버타운을 둘러싼 분쟁이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2007년 입주를 시작한 서울 강서구 SK그레이스힐은 입주 16년 차인 현재까지도 각종 소송 등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관리업체 측은 “관리소장을 상대로 한 소송은 물론이고 입주민 간 고소·고발도 여러 건 있다”며 “입주민마다 건강 수준과 경제 사정이 다르다 보니 적정한 서비스 수준을 정하기가 어려워 분쟁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호텔 주방장을 고용해 제공하던 고급 의무식은 위탁 업체가 하루 2식, 주6일 공급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내부 수영장도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관리비 부담이 크다는 일부 입주민들의 문제 제기 때문이다. 입주민 A씨는 “의무식이 나오지 않는 날은 밀키트 등을 배달 시키거나 편의점에 가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말했다.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한 방송인 주병진의 집.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은 초고급 노인 주거복지시설로 분양돼 2010년 입주했다. [SBS 방송 화면 캡처]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 등장한 방송인 주병진의 집.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은 초고급 노인 주거복지시설로 분양돼 2010년 입주했다. [SBS 방송 화면 캡처]

서울 마포구 실버타운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의 상황도 비슷하다. 운영 업체 선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식당과 의무실 등 기본 시설조차 문을 닫았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노후를 보내러 입주한 장년층 세대와 새로 이사 온 젊은 주민들 사이에 편의 서비스 운영을 둘러싼 갈등이 심하고, 양측 입장이 너무 달라 타협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아예 주택 용도를 일반 아파트로 바꿔 달라는 민원도 꾸준히 들어온다. 난감하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은 2007년 관련법이 바뀌기 전에 분양해 2010년 입주했는데, 그 사이에 '만 60세 미만은 노인 주거복지시설에 거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사기 분양' 논란까지 불거졌다. 지난 3일 방문한 카이저팰리스 1층 로비 불이 꺼져 있는 모습. 신혜연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은 2007년 관련법이 바뀌기 전에 분양해 2010년 입주했는데, 그 사이에 '만 60세 미만은 노인 주거복지시설에 거주할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사기 분양' 논란까지 불거졌다. 지난 3일 방문한 카이저팰리스 1층 로비 불이 꺼져 있는 모습. 신혜연 기자.

‘직원 3명’ 허술한 규정 틈 타 ‘말만 실버타운’ 우후죽순

여러 곳에서 비슷한 분쟁이 계속되는 이유는 관련 규정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실버타운의 경우 사업 진입 문턱이 낮고, 관리 기준도 모호하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이 거주하는 복지시설, 이른바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시설은 크게 ‘양로시설’과 ‘노인복지주택’으로 구분된다. 양로시설의 경우 입소자가 30명만 넘어도 시설장과 사무국장, 사회복지사·의사·영양사·조리원·위생원 등 인원을 반드시 1명 이상 채용해야 하는 등 엄격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에 따라 민간 시설 자체도 별로 없고, 월세와 관리비는 비쌀 수밖에 없다. 서울 광진구의 민간 양로시설 ‘더 클래식 500’의 경우 보증금이 9억원이며, 월세 및 관리비 등으로 매달 400~500만원가량을 낸다.

반면 소수의 양로시설을 제외한 대다수 실버타운은 관리를 위한 필수 정원이 3명인 ‘노인복지주택’이다. 시설 승인 및 입주 문턱은 낮지만 민간 운영업체의 서비스 품질을 관리할 장치가 마땅치 않고, 이용자에게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 않기 때문에 분쟁도 잦은 편이다.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의 수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복지주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대형 건설사에서 분양을 계획한 실버타운은 2000세대에 달한다. 박경민 기자.

양로시설과 노인공동생활가정의 수는 줄어드는 반면 노인복지주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대형 건설사에서 분양을 계획한 실버타운은 2000세대에 달한다. 박경민 기자.

노인 인구가 급증하며 향후 실버타운 관련 분쟁도 더 잦아질 가능성이 크지만, 아직 별다른 대안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복지시설 설치·허가·감독은 모두 지자체 업무”라며 “관련 연구 용역이나 법 개정 계획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한세 숙명여대 실버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실버타운 관리 감독을 지자체에만 미뤄둘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규정을 보완하고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꼼꼼히 따져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임춘식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장)도 “실버타운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정부에서 노인들에 대한 정보 제공과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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