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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휴가온 엄마의 만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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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철없던 어린 시절,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가 그리 맛났다. 알싸하고 달콤한 그 맛이란. 엉뚱하게도 불똥이 엄마표 떡볶이에 튀었다. 어머니가 간장 양념에 갖은 채소를 삼삼하게 볶아낸 떡볶이다. 설탕을 듬뿍 넣고 고추장 간이 센 분식집 떡볶이와 같을 리 없었다. 학교에 갓 들어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바깥 생활’에 한창 맛 들였던 시절. 집안보단 세상 밖의 기준이 뭐든 대단하고 좋아 보였던 것 같다.

그때 ‘진짜’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표정이 좀 미묘했다. 어머니도 30대 ‘초보 엄마’였던 때다. 그때 어머니 얼굴에 비친 감정은 의아함, 어쩌면 상처였을까. 어린 마음에도 미안했는지, 간장 떡볶이를 더 좋아하게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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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떡볶이가 기억난 건 영화 ‘3일의 휴가’(6일 개봉) 덕분이다. 이 영화엔 김치 대신 무를 다져 넣은 만두가 나온다. 남의 집 살림부터 백반집까지 안 해본 고생이 없는 엄마 복자(김해숙)가 입맛 까다로운 어린 딸을 위해 개발한 만두다. 딸 진주(신민아)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뒤늦게 시골집에 돌아가, 생전 미처 물어보지 못한 레시피를 애써서 재현한다. 엄마가 딸을 보러 딱 사흘간 이승에 휴가 온다는 줄거리. 각본을 쓴 유영아 작가가 스스로 어머니가 된 뒤 반성하듯 써내려간 사모곡이다.

어느덧 손맛을 닮은 딸을 유령이 된 엄마가 지켜본다. ‘국민 엄마’ 김해숙의 잔소리 연기에 우는 관객도, 웃는 관객도 있었다. 각자 살아온 대로 다르게 다가오는, 그런 영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