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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XX한테 진료 받으라고?"…휠체어 탄 의사 독하게 만든 그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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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자로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사진)와 정향자 통영시 추봉보건진료소장이 선정됐다. 사진 대우재단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자로 이규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건강증진센터 교수(사진)와 정향자 통영시 추봉보건진료소장이 선정됐다. 사진 대우재단

“이런 XX한테 진료받아야 해?”

20년 전 이규환 분당서울대병원 건강증진센터 치과 클리닉 교수(44)가 어느 환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그는 사지 마비로 인해 전동 휠체어를 탄다. 단국대 치대 본과 3학년이던 2002년 다이빙을 하다가 목을 다쳐 신경ㆍ운동 기능과 관련된 5번, 6번 경수가 손상됐다. 전동 휠체어를 탄 치과의사를 처음 본 환자 중엔 침을 뱉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일부 환자들의 반응 때문에 병원도 그를 내보내야 했다. 이 교수는 “환자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대신 그 순간은 “지금까지 더 독하게 훈련하도록 나를 채찍질하게 만든 장면”으로 기억된다.

포기하지 않고 전문의가 됐지만, 병원 면접에서 단칼에 거절당하거나 며칠 일을 시키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내보내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는 “잘리면 다른 곳에 이력서를 내고 무조건 전화해서 기회를 한 번만 달라고, 잘한다는 걸 보여줄 기회만 달라고 했다. 서울대병원이 ‘한번 와서 해보세요’ 한 게 내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환자와 처음 만나면 늘 이렇게 말한다. “제가 좀 느립니다. 실력은 최고입니다. 제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꼼꼼하게, 안전하게 잘 봐 드립니다.” 어깨와 팔목만 겨우 움직일 수 있지만, 비장애인이 1시간에 익힐 일을 10시간 노력했기에 생긴 자신감이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어 팔에 끼우는 도구를 개발했고 굳은살과 피, 상처가 익숙해질 정도로 연습했다.

이젠 지방에 사는 환자가 믿고 찾아오는 의사가 된 그는 15년 넘게 빼놓지 않는 일이 있다. 장애인과 취약계층 주민들에게 구강건강 상담과 예방법을 알려주는 의료 봉사 활동이다. 그는 “다치기 전엔 좋은 집, 좋은 차 사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일으켜 세워만 주시면 평생을 어려운 사람 위해서 살겠다’고 수만 번 기도했다”고 말했다. 예전처럼 일어서게 되지는 못했지만, 크게 넘어지고 나니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였다고 한다.

이 교수는 제3회 김우중 의료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우중 의료인상은 의료 시설이 없는 취약 지역에 필수 의료를 제공해온 대우재단이 고 김우중 회장의 정신을 기려 2021년 제정했다.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인술을 펼쳐온 이들에게 의료인상ㆍ의료봉사상ㆍ공로상을 수여한다. 김선협 대우재단 이사장은 “설립자께서 45년 전 무의촌에 병원을 세웠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의료인을 찾고 지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인상 공동 수상자인 정향자 통영시 추봉보건진료소장(53)은 22년간 의료취약지역인 경남 통영시의 4개 섬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간호사인 정 소장은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보건진료전담공무원으로서 감기ㆍ경상 처치ㆍ관절염ㆍ고혈압ㆍ당뇨 관리 등 기본적인 진료를 모두 한다. 그는 “의료 환경이 열악한 섬 지역 주민들을 지지해주는 역할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속 얘기 못 하는 주민들의 넋두리를 받아주다가 업무 범위도 넓어졌다. 2018년엔 65세 이상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고령인 주민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노인 두뇌훈련지도사와 웰다잉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의료 봉사상은 쪽방촌부터 저개발 국가까지 여러 곳을 찾아 방사선 진료를 한 유명선 대한방사선사협회 방사선사 등 개인 3명과 단체 2곳이 수상했다. 공로상은 1989년~1993년 신안 대우병원과 완도 대우병원장을 역임하며 24시간 응급 의료를 제공한 곽병찬 전 완도 대우병원장이 받았다. 시상식은 고 김우중 대우 회장 기일인 오는 9일 연세대 백양누리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되며 의료인상 수상자에겐 각 3000만원, 의료봉사상·특별상 수상자에겐 각 1000만원의 상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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