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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11조 낸드 인수 문제 없었나" 질책…투자 조직 통폐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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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서울 종로구 SK 본사. 뉴스1

서울 종로구 SK 본사. 뉴스1

SK가 그룹 내 흩어져 있는 다수의 투자센터를 통폐합한다. 그동안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성장 엔진’으로 삼아온 경영 기조에 변화가 감지되면서 재계와 자본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계열사별 이사회(5·6일)를 거쳐 오는 7일 2024년 정기 임원 인사와 조직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골자는 그룹의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수펙스) 내에 있는 투자1·2팀과, 그룹 지주사인 SK㈜ 산하의 첨단소재·그린·바이오·디지털 등 4개 투자센터를 SK㈜로 합치는 조직 개편이다. 통폐합 이후 투자센터 규모는 상당 부분 축소될 전망이다.

SK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수펙스와 지주사, 멤버사(계열사 )간 투자 기능이 중복돼 있다는 판단이 (통폐합의) 배경”이라며 “멤버사의 고유 투자 기능을 강화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펙스는 공동 투자 안건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SK㈜는 계열사들의 투자 포트폴리오 관리를 담당하는 등 투자와 관련한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기로 했다.

이번 조직 개편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문제 제기가 ‘결정적 한 방’이 됐다. 최 회장은 지난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그룹 경영진들에게 “SK가 여러 곳에 투자하고 있는데 투자 시스템이 잘 작동하는지 철저히 검증하라”며 “제대로 된 투자인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솔리다임’ 인수로 인한 손실 등을 예로 들기도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3'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SK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린 '도쿄포럼 2023'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 SK

최근 SK 주요 계열사들은 다수의 지분 투자 및 M&A에서 막대한 손실을 내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 2021년 인텔로부터 70억 달러(약 9조원)에 솔리다임을 인수했지만, 반도체 업황이 얼어붙으며 지난해에만 3조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오는 2025년까지 잔금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를 치러야 하지만 D램과 달리 낸드 업황의 회복 시점은 미지수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모습. 연합뉴스

2021년 총 16억 달러(약 1조8500억원)을 들여 미국 수소 연료전지 기업 플러그파워의 최대 주주에 오른 SK E&S도 투자 당시 주당 29.99달러였던 지분 가치가 실적 부진과 유동성 위기 등으로 3일(현지시간) 현재 4달러대로 하락한 상태다.

신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던 전기차 배터리 기업 SK온은 2021년 10월 물적분할 이후 기업공개(IPO) 시기를 놓치며 자금난을 겪고 있다. SK온은 미국(조지아·테네시·켄터키), 헝가리(코마롬·이반차), 중국(창저우·후이저우·옌청) 등 해외 곳곳에 공장을 설립 또는 추진 중이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며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SK스퀘어가 지난 9월로 예정됐던 오픈마켓 11번가의 상장이 무기한 연기되고, 매각에도 실패하며 시장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SK 관계자는 “그동안 그룹이 선제적 투자를 강조해 온 만큼 수펙스와 지주사, 각 계열사가 경쟁적으로 지분 투자와 M&A 건수 올리기에 급급한 게 사실”이라며 “같은 사업에 동시에 투자하거나 당장 좋아 보이는 것에 투자한 것들이 쌓이다 보니 부작용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업계 큰손들에게 투자설명회를 하다 보면 SK는 이미 (투자 대상과) 접촉했거나 투자한 경우가 많아 놀랐다”며 “시장에서 ‘SK가 우리보다 빠르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신중한 투자’로 방향을 틀 것으로 보인다. 그룹 관계자는 “성과 중심으로 투자 내실을 기하는 게 이번 조직 개편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뉴시스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뉴시스

한편 SK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수펙스 의장에 선임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조직 쇄신과 세대교체 차원에서 조대식 수펙스 의장, 장동현 SK㈜ 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 등 ‘부회장단 4인’을 모두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SK 내부에선 이들 중 일부는 부회장직을 유지한 채 해외사업담당 등을 맡기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용퇴’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퇴임 여부를 두고 부회장단 내부의 이견도 있어 마지막까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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