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세계 미술 ‘파워 100’에 한국인 넷…그 다양한 빛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해마다 이맘때면 영국 미술전문 매체 아트리뷰(ArtReview)가 ‘파워 100’ 명단을 발표합니다.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는데요, 이 명단은 동시대 세계 미술 지형을 가늠해 보는 데 참고자료가 되곤 합니다.

지난 1일 발표된 올해 ‘파워 100’엔 한국인 4명이 포함됐습니다. 정도련 홍콩 M+ 부관장이자 수석 큐레이터가 17위(수하냐 라펠 M+관장과 공동), 한병철 전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24위입니다. 이어 요즘 유럽 전역에서 활발하게 전시 중인 양혜규 작가가 71위,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이 92위로 선정됐습니다.

지난달 24일 핀란드 헬싱키 미술관에서 개막한 양혜규 개인전 전시장 전경. Kirsi Halkola 촬영. [사진 국제갤러리]

지난달 24일 핀란드 헬싱키 미술관에서 개막한 양혜규 개인전 전시장 전경. Kirsi Halkola 촬영. [사진 국제갤러리]

2021년 11월 개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인 M+는 요즘 홍콩을 대표하는 문화 명소입니다. M+의 두 리더가 나란히 17위(지난해 56위)로 꼽힌 것은 이곳에 쏠린 세계의 관심을 대변합니다. 한국 출신의 정 수석 큐레이터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열린 쿠사마 야요이 회고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습니다.

한병철 전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지난해 48위에서 올해 24위로 순위가 껑충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그가 2020년 62위, 2021년 55위로 꼽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창작하는 아티스트도 아니고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도 아니죠. 대학에서 철학과 문화학을 가르친 그는 『피로사회』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최근엔 신간 『서사의 위기』를 통해 소셜미디어(SNS)에 예속되고 과잉된 정보에 휩쓸리는 현대인의 삶을 ‘서사의 위기’라고 진단해 주목받았고요. 아트리뷰는 그를 “신자유주의 경제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상가”로 소개하며 “그의 글이 작가와 큐레이터에 의해 자주 인용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시대의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미술계에 영향을 미치는 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이밖에 이현숙 국제갤러리 회장이 9년 연속 순위에 드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눈치채셨는지요. 흥미롭게도 여기 명단에 포함된 4인은 미술계에서 각자 역할이 참 다릅니다. 미술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모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합니다. 예술가의 작업에서 역사와 사고(思考)의 맥락을 읽어내는 미술사학자와 비평가 역할은 또 어떤가요. 이들 없이 예술가가 성장할 수 없고,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갤러리 없이 한국 미술이 지평을 넓혀갈 수 없습니다.

예술가와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관람객과 컬렉터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세계에서 우리 미술의 커진 힘을 확인하다 보니, 여기 오기까지 앞서 정말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아직 다 기록되지 않고 충분히 주목받지 못한 ‘파워 피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한국 미술의 생태계를 찬찬히 돌아볼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