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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성숙한 기부문화 정착을 위해 필요한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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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

얼마 전 타계한 DFS면세점 창업자 척 피니는 “돈은 매력적이지만 누구도 한 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다”며 평생 기부를 실천했다. 전 재산 80억 달러를 기부했지만, 본인은 13달러짜리 손목시계를 차고 작은 임대아파트에 살았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기부 집단의 영적 지도자’라며 무한한 존경심을 보였고 그의 선행은 부호들이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는 ‘기빙 플레지’ 캠페인에 영향을 미쳤다.

기부는 이타심과 나눔의 정신을 함양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미덕을 제공한다. 또한 특정 집단의 부가 사회적 약자에게 흘러가도록 하여 부의 편중 문제를 보완하는 공공선을 구현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기부는 개인과 사회를 모두 행복하게 해주는 요술램프인지도 모른다.

최근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자 1인당 현금 기부액이 통계 집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영국 자선단체 CAF가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서도 한국은 119개국 중 8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반면 기부문화가 발달한 미국은 3위였다. Giving USA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인들의 총 기부액은 4990억 달러(약 646조원)로 한국 정부의 지난해 예산(약 608조원)을 넘어선다. 우리의 기부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이 필요할까?

무엇보다 먼저 모금단체의 신뢰성이 중요하다. 기부자는 사업수행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단체에 기부한다. 유명 자선단체와 소수 상위권 대학에 기부금이 몰리는 이유다. 해당 단체들이 경쟁력과 신뢰를 쌓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모금단체는 공동체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지, 다른 단체와 차별화된 경쟁력이 무엇인지 계속 자문함으로써 잠재 기부자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한다.

기부자도 준비가 필요하다. 기부에 앞서 관심 있는 단체의 홈페이지나 연례보고서를 참고해 경쟁력을 판단해보고, 단체를 직접 방문해보거나 기존 기부자의 경험담을 들어보는 것도 좋다. 또한 기부금이 어떻게 관리되며 사용 성과를 어떤 방식으로 공유하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동국대도 최근 한 독지가가 교육·연구 지원 목적으로 거액을 기부한 바 있는데, “홈페이지와 연차보고서를 보고 방문 상담해 본 결과 신뢰감이 느껴져서”라는 점을 기부 이유로 꼽았다. 성숙한 기부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는 실전 사례이다. 기부는 행운처럼 찾아오는 요술램프가 아니다. 받는 쪽이나 주는 쪽이나 정직과 신뢰와 감사를 공유해야 한다.

윤재웅 동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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