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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석유는 내 것”…베네수엘라, 가이아나 금싸라기 땅 침공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실시한 가이아나 합병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직접 투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실시한 가이아나 합병 찬성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직접 투표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남미 베네수엘라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이웃 나라 가이아나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국민투표를 3일(현지시간) 실시해 95%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베네수엘라가 영유권을 주장하는 에세퀴보(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은 가이아나 국토의 74%를 차지하며 석유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국민 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베네수엘라가 해당 지역을 무력 침공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민 95% “에세퀴보 합병하자” 

남미 가이아나를 가로질러 흐르는 에세퀴보 강의 모습. 베네수엘라는 이 강 서쪽 지역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남미 가이아나를 가로질러 흐르는 에세퀴보 강의 모습. 베네수엘라는 이 강 서쪽 지역이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엘비스 아모로소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장은 이날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 주민에게 베네수엘라 시민권을 주는 등의 내용을 묻는 국민투표를 진행해 95% 찬성으로 가결시켰다고 밝혔다. 아모로소 위원장은 찬성표가 1050만 표에 달했다고 하면서도 전체 투표수, 투표율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약 2883만명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과야나 에세키바는 가이아나 국토를 가로지르는 에세퀴보 강의 서쪽 일대 15만9500㎢ 를 가리킨다. 한반도 면적과 유사한 가이아나 총 국토(21만4970㎢)의 74%로, 전체 인구(80만명)의 15%인 12만5000여명이 이곳에 산다.

베네수엘라는 19세기 초반부터 이곳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왔다. 당시 스페인에서 독립한 베네수엘라는 과야나 에세키바를 식민지배하던 영국과 영토 갈등을 벌였고, 1899년 국제중재재판소(PCA)는 해당 지역이 영국령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1966년 가이아나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베네수엘라는 다시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100여년 영토분쟁…2015년 유전 발견 후 격화  

지난달 29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을 합병하는 내용을 묻는 국민투표 홍보 포스터가 걸려있다. 베네수엘라 기존 영토에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을 합쳐놨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을 합병하는 내용을 묻는 국민투표 홍보 포스터가 걸려있다. 베네수엘라 기존 영토에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을 합쳐놨다. AP=연합뉴스

오랫동안 이어진 분쟁이 격화된 건 2015년 미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대규모 유전을 발견해 이 지역이 금싸라기 땅이 되면서다. 여기서 석유를 본격적으로 시추한 2019년부터 가이아나는 농업국에서 신흥부국으로 떠올랐다. 경제 성장률이 3∼4%대에서 20~40%대로 급등했다. 지난해엔 62.3%로, 세계 최대 경제 성장국에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도 가이아나 경제가 3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IMF 세계 경제 성장 전망치(3.0%)의 10배 이상이다.

석유 매장량도 엑손 모빌에 따르면 32억∼50억 배럴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 1인당 매장량으로 따지면 1인당 4000∼6200배럴 정도로 사우디아라비아(1900배럴)보다 많다.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부터 이어진 포퓰리즘 정책의 실패로 극심한 경제난을 맞이한 니콜라스 마두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선 과야나 에세키바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 석유가 경제성 높은 경질유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1위이나, 대부분 황 성분이 섞인 중질유라 별도의 공정이 필요하다. 이에 베네수엘라는 가이아나 정부 승인을 받고 작업하던 석유탐사선을 억류하는 등 영유권을 주장해 왔다.

베네수엘라의 국민투표 결과는 국제법적인 효력을 가지기 어렵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지난 4월 “이 문제의 관할 권한은 ICJ에 있다. 국제사법재판 절차로 해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베네수엘라가 투표를 강행한 건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한 정치적 명분 쌓기란 분석이 나온다.

조앤 도너휴 ICJ 소장은 “마두로 정권은 분쟁지역에 비행장을 건설해 과야나 에세키바 병합에 필요한 물류 지원 시설로 사용하려 한다”며 “국민투표 시도는 이 지역에 대한 행정적 지배를 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가이아나 주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행위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신흥 산유부국 가이아나 위기…“무력충돌 가능성”

지난 7월 로라 리처드슨 미국 육군 남부사령부 사령관이 가이아나를 방문해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중인 가이아나 군 병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7월 로라 리처드슨 미국 육군 남부사령부 사령관이 가이아나를 방문해 미군과 합동 군사훈련중인 가이아나 군 병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민투표 결과가 압도적인 찬성으로 나오면서 베네수엘라의 침공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미 외교협회 폴 앙헬로 국장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마두로의 영토 야망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줬다”고 평가했다.

국토의 70%를 내놓으라는 베네수엘라의 요구에 가이아나는 “실존적 위협”이라며 반발 중이다. 가이아나는 지난달 27일부터 이틀간 미 육군 제1보안지원연대와 회동하는 등 미국과 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24시간 내내 국경 지대 안전을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베네수엘라·가이아나와 인접한 브라질도 접경지역에 레오파드 전차를 배치하는 등 만일을 대비하고 있다.

베네수엘라가 경제 상황이 크게 어렵고, 과야나 에세키바 지역이 험준한 정글로 이뤄진 점 때문에 전쟁을 벌이기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필 건슨 국제위기그룹 수석연구원은 “권위주의 정부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애국심을 고취할 만한 소재를 찾곤 한다”고 지적했다. 내년 대선에서 3선을 노리는 마두로가 이번 분쟁을 정치적으로만 활용할 거란 해석이다.

건슨 연구원은 “현재로썬 동맹국 지원 없이 베네수엘라가 침공을 벌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내년 지지 여론이 악화할 경우 베네수엘라가 국경 부근에서 소규모 교전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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