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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전자주총' 시대 열린다는데...주총 풍경 정말 좋아질까?

중앙일보

입력

“주주들을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주주들의 날 선 질문에 진땀을 흘리는 경영진이 고개를 숙이며 하는 이 말, 매년 3월 주주총회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르면 2025년 3월부터 일부 기업 주총에서는 이런 모습이 사라질 전망이다. ‘완전전자주주총회’가 입법화하면서다.

완전전자주주총회는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만큼 더 많은 주주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반면 경영진과 주주 사이에 ‘대면 소통’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안이 가져올 변화와 우려에 대한 주식시장 참여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빠르면 2025년부터 ‘완전전자주총’ 시대

법무부는 지난달 24일 완전전자주총과 병행전자주총을 허용하는 내용 담은 상법 개정안(정부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무부는 내년 개정안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규정한 만큼 이르면 2025년 3월 주총부터 도입할 수 있다.

현행법에서는 투표만 전자 방식으로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이 개정되면 통지부터 투표, 회의 참석까지 전자 방식으로 가능해진다. 특히 법무부 안에 따르면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열어 각자 희망하는 방식으로 출석 및 투표를 진행하는 ‘병행 전자주총’ 뿐만 아니라 모든 주주가 온라인 주총에 출석해 투표에 참석하는 ‘완전 전자주총’도 가능하다. 이 경우 현장 주총은 아예 열지 않아도 된다. 주총 풍경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개인 주주 참석 편해지고, 기업은 비용 줄여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일반 주주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 경영하기 좋은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개정 입법안의 취지를 밝혔다.

법무부의 설명대로 전자 주총 도입은 주주 입장에서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의결권 행사가 용이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주총이 특정일에 몰리는 ‘수퍼 주총데이’가 빈번해, 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평일 오전에 열리는 주총에 생업이나 물리적 거리 등으로 인해 참석이 불가능했던 문제도 전자주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전자주총은 참석률이나 투표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기업도 환영하는 모습이다. 오프라인 통지 등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 등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 최대 골칫거리인 이른바 ‘주총꾼’(1주만 가지고 주총에 참여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 주주) 문제도 풀 수 있다.

한 기관투자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주총꾼’이 없어서 좋고, 주주 입장에서는 참석률이 올라간다는 게 장점일 것”이라며 “반대로 기업의 경우 주총 참여율이 높아지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많아지고, 주주는 오프라인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경영진과 소통할 창구가 차단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 없어지는데 대한 우려도…美, 부작용 발생

이처럼 온라인 주총의 장점은 많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특히 현장을 아예 배제할 수 있는 ‘완전전자주총’이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완전전자주총이 주주와 경영자 간 소통을 제약하는 방식임이 수많은 미국 기업 사례로 이미 드러났다”며 “화상이나 음성이 아닌 텍스트 박스를 통해서만 질문할 수 있었고, 질문 내용은 경영자만 알고 전체 주주에게 공유되지 않는 사례 등이 여럿 있었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서 불편한 질문이나 불리한 지적을 완전전자 주총으로 쉽게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도 병행 전자주총만 찬성하고 완전 전자주총은 반대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완전 전자추종으로 최근 활발하게 이뤄지는 소액주주 운동이나 행동주의 캠페인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 대표는 “라이크 기획이란 SM엔터테인먼트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데는 현장의 힘이 컸다”며 “대표이사와 임원, 다른 주주 앞에서 문제를 제기해 공감을 끌어냈고, 이를 통해 회사 측의 답변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주총 방식을 사실상 대주주나 경영진이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기업은 정관 변경으로 완전 전자주총을 도입할 수 있다. 이 대표는 “국내 기업 10개 중 7개가 대주주 지분이 30% 이상인 곳”이라며 “기업 대다수가 대주주 마음대로 정관을 변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이런 문제로 인해 개정안은 직접 출석과 병행을 모두 배제하며 완전 전자주총만 허용하는 정관 개정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관에서 모든 방식을 허용하도록 해도 결국 최종 선택권은 회사에 있다.

김우찬 교수는 “소수 주주권이 쉽사리 부여되지 않는 현실상 완전 전자주총과 현장 주총 중 회사 측이 유리한 걸 고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 “일정 주주 반대 시 현장 주총 등 소통 보장해야”

이런 문제로 인해 전문가들은 주주가 현장 주총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거나, 주주와 충분히 소통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보완책을 제안하고 있다.

황헌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장 주총 없이 온라인으로만 여는 완전 전자주총의 도입 요건과 운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일정 지분 이상의 주주가 반대할 경우 현장 주총을 병행하는 등의 주주 보호 방안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완전전자주총을 개최할 경우 현장 주총과 동일한 수준·방식으로 주주들이 참여할 수 있게 가급적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도록 시행령에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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