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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원대 손실 예상 ‘홍콩H지수 ELS’ 배상안 나올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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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홍콩항생중국기업지수(홍콩H지수)와 연계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면서 금융당국이 불완전판매 관련 배상기준안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H지수 ELS 상품에서 불완전판매가 인정될 경우 배상비율 기준안을 만들어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에 대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감원이 대표 민원 사례에 대한 기준안을 내놓으면, 이를 근거로 금융사가 자율 조정에 나서는 방식이다. 내년 초 ELS 상품의 손실이 본격화할 경우 신속하게 분쟁조정에 착수하려는 취지다.

5대 은행, 만기 도래 ELS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 만기 도래 ELS 규모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분쟁조정은 단건 처리가 원칙이지만, 배상기준안 방식이 적용된다면 지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사모펀드 사태 이후 두 번째다. 금감원은 앞선 DLF·라임·옵티머스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손해액의 40~80%를 배상하도록 했다. 배상 비율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 위반, 부당 권유 등에 따른 기본 배상비율을 정한 뒤 투자자 별로 자기 책임 사유를 가감 조정해 결정된다.

고령 투자자와 재가입자가 많다는 점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ELS 고객 상당수가 파생 상품을 잘 모르는 노년층이란 점이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키우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투자자와 부적합한 상품을 권유하면 불완전판매 배상 때 추가적인 손실 배상 비율이 높아진다. 실제 과거 DLF 배상비율 기준안에서는 만 65세 이상에는 5%포인트, 80세 이상은 10%포인트가 가산된다.

반대로 투자자의 금융투자상품 거래 경험이 많거나 거래 금액이 많다면 은행의 책임을 더는 사유가 된다. 강병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ELS 재가입자는 투자 경험으로 상품의 위험을 어느 정도 인지했다고 봐 (은행의) 설명 의무가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ELS 가입자 상당수는 재투자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내부통제 소홀을 몰아붙이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9일 “(금감원에서) 묻기도 전에 (은행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자기 면피로 들린다”고 말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상품 구조에 대해서 사는 사람은 물론 파는 사람조차도 모르고 판매한 것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ELS를 불완전 판매로 제재하기엔 무리란 지적도 있다. 사모펀드 사태와는 달리 ELS는 공모형이고, 수년 동안 은행이 문제없이 팔아온 상품인 만큼 피해가 아닌 손실에 가깝다는 점에서다. 은행권은 H지수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라 녹취·자필서명 같은 방법으로 고객의 이해 여부를 확인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당국을 향한 지적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2019년 DLF 사태 당시 ELS 같은 고난도 상품은 은행에서 판매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 많았다”며 “설명 의무 같은 내부 통제가 실효성 있게 이행되는지에 대해서는 당국의 관리·점검이 부족했다고 본다”고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미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는 H지수 연계 ELS 판매를 모두 중단했다. 5대 은행에서 판매된 홍콩H지수 연계 펀드(ELF)·신탁(ELT)의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 규모는 지난 17일 기준 약 8조4100억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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