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두번째 신고 없었다면"…'꼴통 경감' 강남납치살인 출동 뒷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간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의 저자 장관승 경감이 지난달 29일 서울 도곡지구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신간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의 저자 장관승 경감이 지난달 29일 서울 도곡지구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경찰 최일선 조직인 지구대에 근무하는 고참 경찰관이 자신의 현장 경험담을 책으로 펴냈다. 서울 도곡지구대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장관승(54) 경감 얘기다. 장 경감은 지난 22일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를 발간했다. 스스로를 ‘꼴통’이라고 표현한 이유에 대해 묻자 장 경감은 “제가 말이 직선적이라, 과거 수사할 때도 상사에게 덤비고 기자실에 알리겠다고 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 ‘이 XX 완전 꼴통이네’ 하더라”고 말했다.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

1992년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한 장 경감은 경찰청과 서울경찰청 등에서 사이버범죄·지능범죄수사를 오랫 동안 해왔다. 델타정보통신 주가 시세조작사건 등 대형 사건도 겪었다. 보이스피싱 예방책을 위해 스마트폰에 ‘국제 전화입니다’ 표시가 나도록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도 그다. 그러나 이런 경험담 대신 6년 전부터 시작된 현장 경험을 처음으로 책으로 낸 건, 그 만큼 일선 현장의 경험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장 경감이 지난해부터 근무 중인 도곡지구대는 역삼동 유흥가를 끼고 있어 서울 시내에서도 112 신고가 손꼽히게 많은 곳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3월 벌어졌던 ‘강남 납치 살인 사건’을 꼽았다. 강남 납치 살인사건은 역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도로에서 남성 2명이 여성 1명을 납치해 살해하고, 이를 청부한 공범 3명이 추가로 드러난 사건이다.

지난 3월 29일 오후 11시 48분쯤 서울 역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남성 2명이 여성 1명을 폭행해 차에 태우고 납치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김민정 기자

지난 3월 29일 오후 11시 48분쯤 서울 역삼동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남성 2명이 여성 1명을 폭행해 차에 태우고 납치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김민정 기자

장 경감은 “사건 접수 직후부터 단순한 치정·원한보다 심각한 사건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사건의 시작은 한 주민의 신고였다. “남성 한 명이 여성을 때리고 다른 한 명이 차에 있다. 여성이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고, 여성을 차에 태워 도망갔다. 차량은 K7”이라는 내용이었다.

장 경감은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차량은 이미 떠난 뒤였다. 장 경감은 주변 방범 폐쇄회로(CC)TV를 다 뒤져봤지만 신고자가 얘기한 차종은 없었다. 한 저화질 CCTV에 범행 시간대 주차된 차량의 번호판 ‘1234’(가번호)가 희미하게 찍혔지만, 소형차만 조회됐다. 장 경감은 ‘7234’ ‘1284’ 등 유사한 번호를 조회해보라고 직원들에 지시했고, 수십 번 시도 끝에 준중형차 벨로스터에 용의자가 탄 걸 확인했다. 출동 30분 만이었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장 경감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장 경감은 “하필 그때 같은 단지에서 ‘엄마가 방금 어떤 남자의 전화를 받고 나간 뒤 전화가 되지 않는다’는 실종신고가 들어왔다. 첫 신고와 딱 6분 차이였다. 피해 여성일 수도 있기 때문에 확인을 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신고는 뒤늦게 납치 살인 사건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장 경감은 “만약 두 번째 신고가 없었다면 피해자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신간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의 저자 장관승 경감이 지난달 29일 서울 도곡지구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신간 『꼴통 장 경감 지구대 가다: 강남 지구대 24시』의 저자 장관승 경감이 지난달 29일 서울 도곡지구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장서윤 기자

장 경감은 쉬는 날엔 책상 앞에 앉아 후배들에게 가르칠 학습서를 만드는 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번에 발간된 에세이도 이 학습서로부터 시작됐다. 그의 컴퓨터에는 ‘면담조사 방법’ 등 문서가 수백 개 있었다. 어떻게 하면 현장에 나가서 증언을 확보하고 초동 대응해야 하는지 현장 경험을 덧대 만든 문서다. 이번에 낸 책도 이를 재미있게 여긴 출판사 관계자가 “책을 한 번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며 발간까지 이어졌다. 장 경감은 “지구대는 모든 종류의 사건을 다루는 만큼 법령을 가장 많이 알아야 한다”며 “앞으로도 제일 먼저 현장에 달려가 시민 편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겠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