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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개 200만 마리 풀겠다" 반발도…개 식용 역사 끝날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한육견협회 등이 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개식용금지법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대한육견협회 등이 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개식용금지법 추진 중단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에서 다음 주까지 답이 없으면 지자체마다 개 50~100마리씩 무조건 풀어야죠. 우리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개농장을 운영하는 주영봉씨가 1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대한육견협회 식주권·생존권 위원장이다. ‘식주권’은 먹는 주권을 말한다. 주씨를 포함한 농장주들은 “개식용 금지법은 보신탕을 먹는 1000만 국민의 식주권을 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식용 금지에 반대하며 연일 시위를 하는 이유다.

도시에 개를 푸는 것도 시위 방법에 포함돼 있다. 지난달 30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개농장주들로 구성된 대한육견협회 회원들이 사육하던 개들을 트럭에 실어와 풀어놓으려다가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3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이 개까지 데려와서 투쟁에 나선 건 정부와 국민의힘이 올해 안에 개 식용 종식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식용 개 사육과 도살·유통·판매가 모두 금지된다. 폐업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2027년부터 단속에 들어갈 계획이다.

예정대로 법이 통과되면 4년 뒤부터는 전국의 보신탕집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대한육견협회는 “특별법이 제정되면 개 200만 마리를 용산에 풀겠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개 식용의 역사 

초복을 맞아 '개고기 식용금지'를 두고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초복인 지난 7월 11일 서울 시내 보신탕집의 모습. 뉴스1

초복을 맞아 '개고기 식용금지'를 두고 찬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초복인 지난 7월 11일 서울 시내 보신탕집의 모습. 뉴스1

개를 먹는 풍습은 역사가 길다. 조선 시대에 ‘구증(狗烝:개찜)’이 궁중 수라상에 올랐으며,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안정되게 하고 혈맥을 돕는다’고 기록돼 있다.

개 식용이 법으로 명문화된 것은 50년 전인 1973년 축산법 개정을 통해 가축의 범주에 개가 포함되면서부터다. 정부는 이후 1975년 축산물가공처리법(현 축산물위생관리법) 개정을 통해 도살과 가공 등 개고기 위생을 법으로 관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개 식용 비판이 일자 1978년에 다시 개를 제외했다. 이로 인해 개농장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축산법에는 개를 가축으로 두면서, 도살이나 유통은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시가 국가 이미지를 개선한다며 개 식용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다시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반려동물 인구가 크게 늘면서 점차 개 식용에 대한 거부감이 커졌고,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줄면서 자연스레 전국의 보신탕집은 하나둘 사라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개고기를 취급하는 음식점은 현재 229곳인 것으로 파악됐다. 영등포구가 28곳으로 가장 많다.

동물단체 등을 중심으로 개 식용을 종식해야 한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개고기는 한국의 고유한 음식 문화라는 반대 여론에 부딪혀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김건희 여사, “개 식용 임기 내 종식 노력”…국회 논의 본격화

김건희 여사가 지난 8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개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이날 김 여사는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개 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불법 개 식용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뉴스1

김건희 여사가 지난 8월 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식용 종식을 위한 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개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을 찾아 발언하고 있다. 이날 김 여사는 시민단체가 주관하는 개 식용 종식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불법 개 식용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라고 발언했다. 뉴스1

최근 개고기 종식 논쟁이 불거진 건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개 식용을 정부 임기 내에 종식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밝히면서다. 앞서도 여러 차례 개고기 금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민의힘이 지난 8월 ‘김건희법’이라 불리는 개 식용 금지 법안을 내놓으면서 국회에서의 논의가 본격화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1100여 곳의 개농장에서 52만 마리의 개를 사육하고 있다. 대한육견협회 측은 집계되지 않은 영세한 개농장까지 합치면 식용 목적으로 키우는 개가 200만 마리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주 위원장은 “아직도 지방에 있는 보신탕집에는 개고기를 먹으려고 많은 사람이 오는 데 개식용을 법으로 금지하는 건 식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보상금을 통해 농장주들에게 희망 폐업을 유도하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개식용 수요가 없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5일 강원도청 앞에서 동물권단체 케어와 와치독 관계자들이 지역 내 불법 개도살장과 개농장 단속·행정 처분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월 5일 강원도청 앞에서 동물권단체 케어와 와치독 관계자들이 지역 내 불법 개도살장과 개농장 단속·행정 처분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개 식용을 법으로 금지할 경우 개농장에 남아 있는 개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김도희 동물해방물결 해방정치연구소장은 “식용 목적으로 키워진 개들은 갈 곳이 없으면 안락사 될 수밖에 없다”며 “개 식용을 금지하는 동시에 사육 중인 개들의 여생을 책임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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