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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탄핵 폭주와 거부권 악순환에 갇힌 정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67호 30면

1일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강행 처리를 앞두고 자진 사퇴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뉴스1

1일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본회의 탄핵소추안 강행 처리를 앞두고 자진 사퇴한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모습. 뉴스1

이동관 방통위원장 사퇴…검사탄핵안 강행 처리

윤석열 대통령, 노란봉투법·방송3법 거부권 행사

여야 쟁쟁 속 예산안·민생법안 뒷전으로 밀려나

정치권이 연말까지도 탄핵과 거부권 맞대응이라는 악순환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타협과 절충을 통한 합의 도출이라는 민주적 절차가 외면당하면서 국민의 정치 피로감과 혐오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야당의 탄핵 압박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어제 자진 사퇴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탄핵소추안 국회 본회의 처리 강행을 몇 시간 앞두고서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의를 수용해 방통위는 이상인 부위원장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5인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는 후속 인선 지연으로 그동안 위원장-부위원장 2인 체제로 운영되는 파행을 겪었다. 이제 위원장마저 물러남으로써 차기 위원장이나 상임위원이 임명될 때까지 주요 방송정책과 사업 진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된 데는 탄핵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민주당 책임이 크다. 탄핵안은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있다. 민주당은 애초 지난달 9일 탄핵안을 본회의에 보고했다. 이때 여당이 무제한 토론을 전격 취소하면서 본회의 연장이 무산되자 표결 시한(본회의 보고 후 24~72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된 민주당은 탄핵안을 스스로 철회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부결 안건을 회기 중 다시 발의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탄핵안 철회서를 결재해줬다. 위헌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지난달 28일 2차 제출 때는 탄핵 사유로 ‘검찰청법 규정’ 때문이라는 엉뚱한 내용을 넣었다가 철회와 제출을 재반복했다. 동시 추진한 검사 탄핵안 문구를 ‘복붙’(복사해 붙이기)하다 벌어진 황당한 일이라고 한다. “단순 실수”라는 해명이지만, 공당의 정략적 탄핵 추진과 경솔함이 그대로 노출됐다.

취임(8월 28일) 석 달밖에 안 된 방통위원장이 탄핵당할 정도로 명백한 법적 흠결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방통위 독립성 침해나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 개입 주장 등 민주당이 내놓은 사유는 그런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게 중론이다. 방통위원장 탄핵안 처리는 이동관 위원장의 사퇴로 무산된 가운데, 손준성·이정섭 검사 탄핵안은 여당 불참 속에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되는 오점을 남겼다.

윤 대통령은 어제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해 국회의 재의를 요구했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에 이어 현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째 거부권 행사였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정의를 무리하게 확대하고, 불법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과도하게 제한해 산업 현장에 갈등이나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 방송3법도 지배구조 변경을 통해 친야 성향 단체에 방송사 사장 결정권을 주는 ‘꼼수 법안’이란 비판을 받아왔다. 문재인 정부도 꺼렸던 법안을 여야가 바뀌자 야당이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인 것이다.

무리한 법이었던 만큼 거부권 행사는 예견됐다. 야당의 강행 처리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적 계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협상과 설득을 통해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 대신 거부권에 의존한 대통령도 정치 파행의 책임에서 벗어난다고 할 수 없다. 정치가 실종된 사이 예산안은 법정 시한(12월 2일) 내 처리가 결국 무산됐다. 시급한 민생예산 집행은 줄줄이 지연될 수밖에 없다. 민생 법안도 산적해 있다. 경제 상황은 엄중하다. 하반기 회복세가 정부 기대만큼 뚜렷하지 않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하향 조정됐고, 물가 압박은 더 커졌다. 선거가 닥치면 너도나도 또다시 안면 몰수하고 표를 구하려 들 것이다. 더는 용납해선 안 될 구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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