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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맞아 중국 와인 내놓은 시진핑, 나파밸리 넘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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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호 24면

[왕사부의 중식만담] 중국의 와인 굴기

2017년 11월 베이징 인민대회당. 시진핑이 트럼프를 맞아 궈옌(國宴·국연)을 베풀었다. 건배주는 중국 포도주였다. 허베이성에서 만든 ‘창청(長城)’ 화이트 2011과 레드 2009였다. 세계 최고 포도주를 만드는 나파밸리의 나라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 포도주라니. “나는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어요. 한 번도 마신 적이 없다고요. 알겠어요?”라는 트럼프이니 입에 대지는 않았겠지만 어 이거 봐라 했을 테다.

이 자리가 처음은 아니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역시 중국산을 내놨다. 산둥성 옌타이에서 만든 ‘장위(張裕)’ 1992년산 레드와 2008년산 화이트였다. 1949년 건국 이래 공식 연회에 오른 포도주는 대개 프랑스산이었다. 2000년대 들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영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는 실속 있는 대체품을 찾고자 국내외 11종을 놓고 품평회를 열었다. 장위가 총점에서 2등, 가성비로는 1등을 했다. 더는 외국산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중국 포도주 역사는 깊다. 중국 술을 백·황·홍주로 나누는 데서도 드러난다. 백주는 투명한 증류주이고, 곡식을 발효해 만드는 황주는 한국의 동동주와 비슷하다. 홍주가 바로 포도주다. 역사로는 유럽 못잖다지만 상업 양조장은 1892년에 생긴 장위가 처음이다. 수면 아래 있던 포도주 산업은 1980년대 개혁개방 물결을 타면서 기지개를 켠다. 미래를 내다본 서구자본들이 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2011년 12월 사건이 일어난다. 전문지 디캔터의 세계포도주품평회에서 닝샤(寧夏)회족자치구에서 만든 자베이란(加貝蘭)이 보르도 계통 레드 분야 최고상을 받았다. 중국산이 세계 정상에 오르기는 처음이었다. 다른 제품들도 줄줄이 상을 받으며 국제무대에서 중국 브랜드가 조금씩 알려졌다. 정부도 팔 걷고 나섰다. 2016년 시진핑은 닝샤에 사흘간 머물며 ‘가는 방향 그대로 쭉 전진하라’는 말을 남겼다. 코로나 와중인 2020년 양회 폐막 뒤 처음으로 찾은 민생 현장도 닝샤였다. 닝샤는 건조한 황토지대다. 남북 150㎞의 기다란 허란산(賀蘭山) 동쪽 기슭에 포도밭이 늘어서 있다. 그 옆을 황허가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중국 포도주 40%가 이 일대서 난다. 100개가 넘는 닝샤 양조장 중 60곳 이상이 국제대회에서 수상했다.

그래도 중국 포도주 고향은 산둥성 옌타이다. 이곳에 뿌리를 둔 장위그룹은 중국 최대 포도주 생산기업이다. 세계에서 4번째 규모다. 장위가 만드는 많고 많은 제품 중 1937년 첫선을 보인 제바이나(解百納)는 지금까지 약 5억병 이상 팔렸단다. 옌타이 지하 숙성고에 늘어선 오크통 중 3개는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됐다. 1만5000L짜리이니 한 통에서 와인 2만병이 나오는 셈이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지만 문화재로 손색이 없다.

1 국가연회에 단골로 오르는 중국 와인 ‘창청’. 2 중국의 대표적 인 와인생산 기업 ‘장위’가 만든 제바이나. [사진 각 브랜드]

1 국가연회에 단골로 오르는 중국 와인 ‘창청’. 2 중국의 대표적 인 와인생산 기업 ‘장위’가 만든 제바이나. [사진 각 브랜드]

권력자들이 장위 명성을 높여줬다. 청나라 말 서태후가 설립을 지원하고, 청나라를 무너뜨린 쑨원은 품중예천(品重醴泉·기품 있고 샘물처럼 감미롭다)이란 글을 써주었다. 저우언라이는 외국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장쩌민도 방문해 덕담을 남겼다.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창리(昌黎)현은 만리장성(萬里長城)그룹의 근거지다. 이 회사가 1983년에 선보인 창청은 국가연회에 단골로 오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 단독으로 공급했다. 산시(山西)성 포도주 또한 유서 깊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등장한다. 옛 실크로드 주변 지역은 중국 포도주의 과거이자 미래다. 간쑤성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을 따라 포도원이 분포한다. 해발 1500m 산지에서 아이스 와인(氷酒·빙주)도 나온다. 신장위구르의 투르판 분지 사막 기후에서 자라는 포도는 풍미 넘친다.

남쪽 윈난성도 포도 산지다. 모엣 헤네시의 ‘아오윈(傲雲)’을 만드는 포도밭은 해발 2600m에 있다. 겨울이 혹독한 둥베이(東北) 일대도 주목받는다. 2017년 세계 최대 와인대회인 디캔터 월드와이드에서 지린성 ‘비달(Vidal) 2014’가 아이스 와인 1위를 차지했다.

지도에서 포도주 산지를 살펴보면 북위 25도~45도 사이에 있다. 그중에서도 북위 37도~38도 선에서 나오는 포도주 품질이 뛰어나다. 스페인 남부나 미국 나파밸리와 같은 위도인데, 옌타이·닝샤·간쑤가 이 선에 있다.

1976년 5월 세계 포도주 역사가 방향을 틀었다. 영국인 스티븐 스퍼리어가 파리에서 레이블을 가리고 연 시음회 때문이었다. 대상은 미국·프랑스산, 평론가 11인 중 9인이 프랑스인이었다. 다들 미국이 많이 컸다는데 구경 좀 할까 하는 분위기였다. 미국도 한 수 접고 들어간 터였다. 하지만 웬걸, 결과는 경악 그 자체였다. 5위 안에 화이트는 미국산이 1·3·4등을, 레드는 1·5등을 차지했다. ‘파리의 심판’으로 불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포도주는 날개를 달았다. 2006년, 양측은 런던과 미국 나파밸리에서 같은 시간에 30년 전과 같은 포도주로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행사 주관자는 스퍼리어. 격차는 더 벌어졌다. 레드 5위까지를 모두 미국이 휩쓸었다. 시간과 노력은 시장을 바꾼다.

현재 중국은 포도 재배면적 세계 2위, 포도주 생산량 6위다. 2035년까지 보르도와 나파밸리를 넘어선다는 계획은 현재진행형이다. 10년 뒤 시장이 벌써 궁금하다.

※정리: 안충기 기자

왕육성 중식당 ‘진진’ 셰프. 화교 2세로 50년 업력을 가진 중식 백전노장. 인생 1막을 마치고 소일 삼아 낸 서울 서교동의 작은 중식당 ‘진진’이 2016년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으며 인생 2막이 다시 바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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