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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X 뚫릴텐데 안전 어쩌나…코레일 노조 압박에 못바꾸는 이 법 [이슈진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슈진단]  

산사태로 토사가 쏟아진 선로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산사태로 토사가 쏟아진 선로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연합뉴스

 철도 유지보수를 코레일만 맡도록 한 현행법의 관련 조항을 바꾸려는 개정안이 발의된 지 1년이 다 되도록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법안심사소위원회(소위)에 발이 묶여 있다. 전문가와 철도업계에선 해당 조항 탓에 유지보수 현장에서 빚어지는 엇박자와 혼선을 풀기 위해선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일 국토교통부와 철도업계 등에 따르면 논란이 된 법률 개정안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3명이 지난해 12월 공동 발의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철도산업발전기본법(철산법)은 철도 운영과 건설 분리를 골자로 하는 철도 구조개혁을 위해 20년 전인 2003년 제정됐다. 문제의 조항은 제38조에 있는 “철도시설유지보수 시행업무는 철도공사(현 코레일)에 위탁한다”는 문구다.

 당시 철도 운영과 건설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철도노조를 중심으로 철도 민영화 우려가 강했던데다, 철도 운영자가 유지보수도 맡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이 조항이 들어갔다. 당시 도시철도와 민자철도를 제외한 광역철도·일반철도·고속철도의 운영자가 코레일뿐이라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코레일이 운영하고, 유지보수도 하면 되는 상황이라 별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말 수서고속철도(SRT)가 개통하면서 SR이라는 새로운 철도운영자가 등장했다. 운영은 SR이 하지만 선로 등 시설유지보수는 코레일이 맡고 있다. 또 지난해 3월 개통한 서울지하철 4호선의 연장구간인 진접선은 서울교통공사가 운영과 관제 등을 모두 담당하는데도 유지보수는 별 관련 없는 코레일이 하고 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연장선인 ‘진접선’의 유지보수를 코레일이 맡고 있다. 사진 국가철도공단

서울지하철 4호선 연장선인 ‘진접선’의 유지보수를 코레일이 맡고 있다. 사진 국가철도공단

 물론 철산법 38조 규정 때문이긴 하지만 운영자가 직접 유지보수를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코레일이나 철도노조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상황이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거꾸로 법적으로 코레일이 담당해야 할 유지보수를 해당 운영자가 직접 하는 사례도 있다. 인천공항 제1 여객터미널에서 제2 여객터미널을 잇는 공항철도 추가 구간이 그곳이다.

 광역철도인 데다 재정을 투입해 건설한 구간이기 때문에 민자로 건설된 공항철도의 다른 구간과 달리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맡아야 한다. 그러나 “해당 구간이 짧고 코레일의 사업소와도 거리가 멀어서 유지보수를 공항철도가 직접 하고 있다”는 게 코레일 측 설명이다. 형식적으로는 코레일이 공항철도에 유지보수를 재위탁한 모양새지만 진접선과 비교하면 모순되는 상황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선 법 위반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게다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속속 개통할 경우 같은 노선이라도 민자구간은 민간 운영자가, 재정구간은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맡는 비효율적인 상황이 더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유지보수와 안전운행의 연속성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처럼 현장에서 철산법 38조로 인한 논란과 혼선이 생기면서 코레일의 유지보수 독점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고, 개정안 발의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교통소위(위원장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9월 19일과 지난달 21일 등 두 차례 열린 소위에선 ▶철도노조, 코레일, 국가철도공단 등 이해당사자 간 협의 부족 ▶정부 발주 용역 미 완료 등의 이유로 해당 법안이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철도노조가 지난달 7일 서울 국회 인근에서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철도노조가 지난달 7일 서울 국회 인근에서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철도업계에선 개정안이 통과되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철도노조를 정치권이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철도노조는 지난달 초 결의대회를 열고 “철산법 개정안이 처리될 경우 시설유지보수업무는 국토부의 맘대로 언제든 민간개방과 다단계 하청으로 전락하고, 철도 민영화도 급물살을 탈 가능성 크다”며 총파업을 경고한 바 있다. 철도노조는 또 민주당 원내지도부도 만나 개정안 반대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토부는 법 개정과 철도 민영화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박지홍 국토부 철도국장은 “유지보수 현장에서 해당 조항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법을 바꾸려고 하는 것뿐”이라며 “이와 관련해, 국회 소위 의원실들에 국토부가 올해 초 발주한 ‘철도안전체계 심층 진단 및 개선 방안 연구’ 결과와 정부의 정책방향도 이미 설명했다”고 말했다.

 국토부가 발주한 용역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수행 중으로 지난해 12월 통복터널 단전 사고, 11월 무궁화호 탈선, 7월 SRT(수서고속열차) 탈선, 1월 KTX 탈선 등 잇따라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한 방안을 찾자는 취지였다. 이 용역에선 관제·유지보수의 이관이 바람직하지만, 철저한 준비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분간 코레일에 그대로 두고 조직혁신 및 안전관리를 우선 추진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코레일이 유지보수를 독점 수행토록 하는 철산법 조항 때문에 시설관리 업무가 복잡하게 나뉘고,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생긴다며 해당 조항의 삭제가 필요하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고 한다. 최진석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도 “이미 현장에서 법대로 되지 않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해당 조항을 삭제해 상황별로 유지보수 업무를 유연하게 시행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발생한 SRT 열차 탈선 사고 현장. 뉴스1

지난해 7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발생한 SRT 열차 탈선 사고 현장. 뉴스1

 익명을 요구한 철도업계 관계자도 “기본적으로 운영자가 직접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측면에서도 유리하다”며 “지금처럼 법 조항 때문에 코레일이 별 관련 없는 구간의 유지보수까지 맡는 문제는 서둘러 해소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영화든, 유지보수업체 난립이든 우려되는 상황이 있다면 그와 관련한 규정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마련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번 소위는 5일로 예정돼 있다. 여기서도 상정과 처리가 불발되면 사실상 해당 법 개정안은 폐기수순으로 들어갈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국회에서 통과가 안 되면 내년은 총선 정국이라서 정책 관련 법안 통과가 더 쉽지 않을 거란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최인호 위원장은 “해당 법률 개정안에 대한 국토부와 유관기관들의 조정안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정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느냐에 따라 상정 여부가 갈릴 거란 의미로 읽힌다.

 철도 유지보수는 안전 운행, 즉 승객 안전과 직결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오래전에 만든 법 때문에 현장에서 엇박자가 나고 있고,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 국회와 정부·유관기관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만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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