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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엄마처럼 되기 싫어"…부모는 "손주 보고싶다" 말 접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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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병원의 신생아실. 연합뉴스

서울 한 병원의 신생아실. 연합뉴스

60대 주부 김모씨는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아이 소식이 없는 30대 딸 부부에게 “아이는 언제 낳을 것이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김씨 남편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직장인인 딸이 일 욕심이 크다. 내 자식이 귀한데 굳이 아이를 낳아 고생하라고 등 떠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50대 공무원 최모(여)씨는 최근 대학생 딸에게 “나는 결혼도 안 할 거고 아이도 안 낳을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들었지만 대꾸하지 못했다. 최씨는 “딸이 엄마가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고 컸기 때문”이라며 “퇴근이 늦거나 주말 근무가 있을 때면, 어쩔 수 없이 시부모님께 통사정하며 아이를 맡겼다. 딸은 ‘엄마처럼 되기 싫다’고 말하는데 그 마음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달라진 기성세대…“애 낳으라고 하기 부담”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부모가 결혼한 자녀에게 '손주를 보고 싶다'며 출산을 권유하는 경우가 줄고 있다. 저출산 시대의 단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가임 여성(15~49세)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연말에 출생아가 줄어드는 흐름을 고려했을 때 4분기(10~12월)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로 0.6명대로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출산을 꺼리는 자식들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부모도 눈치를 본다. 60대 자영업자 조모씨는 “요새는 아이 낳으라고 했다가는 ‘대신 키워줄 거냐’는 말을 듣는다”라며 “자녀 계획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딩크족’을 자처하는 직장인 선모(여·37)씨는 “양가 어른들이 임신 계획을 묻는 게 예민한 문제라는 걸 알고 있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혼인 여성 출산율 떨어지자 합계출산율 급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계봉오 국민대 교수]

혼인 여성 출산율 떨어지자 합계출산율 급감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통계청, 계봉오 국민대 교수]

계봉오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낸 ‘유배우 출산율 변화’ 논문에 따르면 2020년 부부 합계출산율은 1.13명이었다. 2005~2015년 10년간 1.4~1.5명대를 유지한 것과 비교했을 때 큰 폭으로 감소했다. 결혼도 안 하지만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는 부부가 늘었다는 의미다. 결혼 8년 넘게 아이가 없는 A씨(36)는 “육아에 워낙 돈이 많이 드니 양가 부모님이 손주를 내심 바라면서도 그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년 전만 해도 결혼하면 아이 낳는 걸 바람직하게 생각하던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지금은 무너져버렸다”라며 “본인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기성세대도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김인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출산 관련 통계가 안 좋으니 부모들이 자식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없게 된 변화가 있는 것”이라며 “부동산·교육 등 아이를 낳고 키우는 자녀 세대가 겪을 사회적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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