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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윤의 내 친구, 중국인] 듣기 거북해도 꼭 알아야 할 꽌시

중앙일보

입력

꽌시는 일정 시간 이상 충전해야 한다. 꽌시 형성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셔터스톡

꽌시는 일정 시간 이상 충전해야 한다. 꽌시 형성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셔터스톡

관우(關羽)는 꽌시의 모델이자, 동시에 이상형(理想型)이다.
꽌시, 듣기만 해도 거북하지만, 알아보자 그래도

중국인들과의 마주침은 이제는 비단 중국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만나게 된다. 어쩌면 듣던 바와 달리(?) 내가 만나는 중국인들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제3자의 신분으로 만나게 될 때, 중국인이 주는 인상은 우리가 매체를 통해 알던 것과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관계를 통해서 마주하게 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듣던 바와 달리’ 매우 우호적이고 대범하며 친절하기까지 하다. 중국인은 사람들을 대할 때, “나와 무슨 관계인가?”를 먼저 살피고 어떻게 응대할까를 결정하기 때문이다(중국 사회학자 페이샤오통). 나와의 관계가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된다. 꽌시가 ‘가치관’을 결정한다.

중국인은 인류를 ‘내집단(內集團, 아는 사람들)’과 ‘외집단(外集團, 모르는 사람들)’으로 구분한다고 말한다. 아는 이들에게는 그 관계의 깊이에 따라 우대를 하고, 모르는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모른 척하며 차별한다.

아는 이들끼리는 서로 (인정 있게, 심지어는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배려한다. 虽无公德心,但有私德心(공공의 도덕심은 없지만, 그러나 우리끼리의 도덕심은 있다). 중국인들에게 도덕심이 없다고 하면 흔히 대꾸하는 말이다. 도덕이 아예 없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따라 다르다는 말이다. 공공(公共)과 공중(公衆)에 대한, 구체적으로 말하자만 공(公)에 대한 관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의 수준으로 해석해 보면, 공(公)과 사(私)에서 공(公)은 나와 타자가 공유하는 지점이 아니다. 중국인들에게 공(公)은 정부 혹은 관(官)을 표현한다. 대중(大衆)이나 공공(公衆)같이 ‘우리와 타자가 공유하는’ 중간지대가 아니라 ‘우리 밖의 영역’이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중(公衆. 또는 대중)이 아니라, 타인이다. ‘아는 이’와 ‘모르는 이’로 구분했던 중국의 전통사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공질서의 개념은 익숙하지 않다. 사회적 약속이 느슨할 수밖에 없다. 단, ‘아는 이’끼리의 배려와 의리, 그리고 그 결속력은 매우 강력하다.

酒是陈的香,朋友是老的好(술은 오래 묵은 술이 향기롭고, 친구는 오래되어야 좋다)

술과 친구는 오랠수록 좋다는 말이다. 좋은 재료와 환경도 필요하지만, 방금 담근 술보다는 오래되어야 좋은 술이 된다. 중요한 지점이 있다. 아무나 오래 사귄다고 좋은 친구가 되지 않는다. 그를 오래 알았다고 해서 그가 내 친구가 되고 이른바 나와 꽌시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한편, 순서도 중요하다. 친구가 되어서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 지내봐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래 지낸 후에야, 그래서 술이 숙성되듯이 서로 ‘충분한’ 교감이 이루어져야 좋은 친구가 된다! (물론 나쁜 거래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꽌시’도 있다. ‘酒肉朋友(술과 고기로 맺어진 사이)’가 그중 하나인데, 이런 유의 꽌시는 부패와 부도덕을 야기한다.)

친구라면 오랜 친구가 되어야 하지만, 진짜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에 만나서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꽌시의 ‘충전(充電) 이론’
꽌시는 일정 시간 이상 충전해야 한다. 꽌시 형성에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급의 핸드폰을 구매했다. 포장을 뜯고 바로 사용한다. 신이 났다. 그런데 얼마 안 지나자 핸드폰이 꺼졌다. 충전을 하지 않은 것이다. 비싼 돈을 들여 장만한 폰을 당장 쓸 수 없으니, 아쉽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고 해도, 충전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다! 꽌시도 이와 같다. 한 두 번 만나서 만들어지는 꽌시는 없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지금까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그런 건 꽌시가 아니다. 그냥 이해관계에 불과하다. 꽌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시간성’이다. 시간의 숙성이 필요하다. 꽌시라는 감정이 축적될 시간, 즉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꽌시의 충전 이론’이다.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

서로 일면식 없이 살아왔던 세 명의 ‘모르는 이’ 들이 첫 만남에 의형제를 맺었다. 결의를 맺고 또 그것을 평생 지켰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사적 ‘실존’ 인물은 관우다. 신화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실재 존재했던 영웅이자, 후대에는 중국의 유불도(儒佛道) 사상 및 종교적으로, 약한 자를 돕는 수호자이며 재물을 모으고 지켜주는 재신(財神)으로까지 추앙받는다. 관우 숭배 사상은 당나라 때부터 유행되기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간단히 요점을 말하면, 관우의 숭배는 결국 그의 의리(義理)로부터 비롯된다. 의리를 지켰다는 표현을 통속적으로 하면, 그들과의 꽌시를 내내 유지했다는 말이 된다.

관우는 도원결의한 형제들과 평생 의리를 지켰다. 형제로서 친구로서 그 관계를 평생 지켰다. 관우는 꽌시의 모범적인 실천가다. 한 번 꽌시를 맺으면 끝까지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꽌시의 시간성’을 언급할 때면, 대부분 가장 먼저 관우를 꼽는 이유다.

노동집약적 농업사회였던 중국의 전통 사회는 ‘아는 이들끼리의 사회’다. ‘내집단’ 성원들끼리의 결속력은 강하고, 타자에 대해서는 매우 배타적이다. 그런데, 관우와 형제들은 첫 만남, 즉 ‘모르는 이’들끼리 평생을 약속한다. 사회적 관계가 확장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모르는 이’들과도 친구가 되고 꽌시가 되어서 서로 우의를 나누고 의지하고 싶지만, ‘모르는 이’들을 믿는 게 불안하다. 그런데 관우는 모르는 이들과 형제들을 맺었고, 또 서로 그 의리를 지켰다. 첫 만남에 꽌시가 되고, 그 꽌시를 평생 지속했다. 중국인들의 로망이다. 아름다운 브로맨스다. 현실 세계에서는, 꽌시를 지속은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운명적인 첫 만남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도원결의에는 두 개의 방점을 찍는다. ‘꽌시의 지속’과 ‘모르는 사이끼리’이다. 꽌시의 지속은 관우가 실천해 냄으로써 그 모델이 되었지만, ‘첫 만남에 꽌시가 형성’되었다는 것은 운명이며, 행운이다. 많은 중국인들이 좋은 친구들과 첫 만남부터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소원하지만, 비현실적인 바람일 뿐이다. 그래서 관우는 꽌시의 이상형인 것이다.

관우와 그 형제들 간의 꽌시는, 현실에서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 한 번 만나 친구가 되고, 또 평생 그 의리를 지키는 소설 같은 얘기는, 소설에서나 있다. (간혹, 특별한 만남도 있지만, 예외라고 여기면 좋겠다. 중국인들이 예의상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너무 쉽게 ‘친구다’라고 믿어 버리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중국인들이 예의상 하는 것일 뿐, 속이려는 의도가 없었는데도 ‘제풀에 속아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국에는 강꽌시(强关系)와 약꽌시(弱关系)가 있다.
전자가 강한 결속력이 있는 꽌시(强关系)라면, 후자는 서로 알고만 지내는 사이다.

상대방은 있는데, 나는 없으면 반드시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꽌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꽌시는 제대로 된 꽌시여야 한다. 꽌시를 ‘강(强)꽌시’와 ‘약(弱)꽌시’로 구분하기도 한다. 전자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꽌시고, 후자는 단지 알고 있는 정도의 꽌시를 말한다. 약꽌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업이나 주위에서 ‘꽌시가 많다’라고 자랑하지만, 실제로 도움을 못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 많은 이들을 만난 것도 사실이고, 서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도 봤는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때로는 도와달라고 아예 부탁할 엄두도 못 낸다. 약꽌시이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정보를 ‘사람을 통해서 혹은 인맥을 통해서’ 확인한다. 공개된 정보가 충분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통한 정보 역시 아직도 중요하다. 이른 바 ‘휴민트’, 즉 인적 정보(人的 情報)다. 휴먼(human)과 인텔리전스(intelligence)의 합성어인 ‘휴민트’는 첩보영화에서 스파이로 활약할 뿐 아니라, 기업 현장에서도 늘 활용된다.

정보가 부족하고 투명하지 않은 중국 현장이라면, 휴민트는 더욱 중요하다. 중국 관련한 분야에서, 꽌시가 있는 이와 없는 이와의 경쟁력은 확연하게 차별된다. 한편, 가장 불행한 결과는 ‘없는 꽌시를 있다’라고 착각할 때 초래된다. 약꽌시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꽌시는 있으면 제일 좋고, 없다고 해도 최악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므로) 꾸준히 만들어가면 된다. 가장 나쁜 것은 ‘없는 데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약꽌시를 강꽌시로 오해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과거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종종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언제 오는지…이미 베이징에 도착했는지’는 항상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시도했던 두 사람(또는 두 조직)의 사례를 소개한다.

自欺欺人(나도 속고 남도 속이다)
약꽌시를 강꽌시로 오해하면, 본인과 조직 모두에게 큰 해가 된다

우리나라의 고위층이 ‘친하다고 생각했던(이른바 ‘강꽌시’라고 여겼던)’ 중국의 고위 관리에게 전화를 해서 문의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었고, 이 내용을 자신 있게 보고를 했다. 이후 ‘아직 미도착’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모든 대책을 수립했는데, 알고 보니 이미 도착했었다. 정보가 틀렸다. “나와 친하므로, 그가 나한테 준 정보는 정확할 것이다”라는 엄중한 착각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약꽌시’를 ‘강꽌시’라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한편, 거짓 정보를 준 중국 관리가 나쁘다고 탓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런 민감한 화제를 문의하는 방법(전화는 보안이 철저한 도구가 아니다)마저도 틀렸기 때문이다.

自知之明(나 자신을 아는 현명함)

나의 위치와 실력을 냉정히 파악하고 일을 추진하면, 꽌시가 없어도 때로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모 신문사의 특파원은 본인이 인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방법을 찾아 냈다. 그는 주중 북한 대사관에 직접 전화를 했다. 교환원이 전화를 받자마자 “위원장 동지가 왔냐?”라고 대뜸 물어봤다고 한다. “우리는 그딴 것 모른다”라며 당황스러워하는 교환원의 대답을 듣고, “그는 왔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본국에 보고를 했다고 한다.

꽌시는 교환성이 있는 재화(財貨)다
재물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꽌시도, 꾸준히 많이 모아서 좋은 곳에 잘 사용하자

꽌시는 있으면 좋다. 미국의 부자가 대략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식에게 뭐든 할 수 있도록 돈을 줘라. 단 아무것도 안 해도 될 만큼 주지는 말아라”. 돈으로 자식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지만, 돈에 빠져서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는 얘기로 이해했다.

돈의 가장 매력적인 가치는 교환성이다. 돈으로 수많은 기회를 얻을(즉, 바꿀) 수 있다. 서양에는 이런 교환 가치로 ‘돈, 선물, 감정, 지위, 정보 및 서비스’의 6가지가 있다고 하는데, 중국에는 하나 더 있다고 한다. ‘꽌시’다. 중국인에게 꽌시는 교환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한편, 중국인에게 꽌시는 인간관계이며 인정이며, 살아가는 도리이다. 그러니, 잘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꽌시의 부정적인 측면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리사가 좋은 칼을 가지고 멋진 요리를 만들어 주면 고마운 일이다. 그가 칼을 가지고 분명 강도짓에 사용할 거라고 굳이 상상할 필요는 없다.

중국이 우리 맘에 쏙 들지는 않더라도 함께 윈윈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좋은 사람하고도 잘 지내고, 나쁜 사람하고도 무조건 좋게만 지내자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늘 좋거나 늘 나쁜 이는 거의 없다. 이런 사람과는 이렇게, 저런 사람과는 저렇게 잘 지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가 중국에 대해 어떤 선입관을 확신하기보다는, 좀 더 중국인들을 이해하고 나서 판단과 선택을 했으면 좋겠다.

미래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도 있다.
중국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지만, 우리의 미래에 중국은 분명히 있다.

글 류재윤 협상·비즈니스 문화 저술가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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