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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병기 ‘필향만리’

慾, 焉得剛(욕, 언득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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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5면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한자자전은 ‘强’과 ‘剛’을 다 ‘굳셀 강’이라고 훈독한다. 그러나, 두 글자는 쓰임이 다르다. ‘强’은 ‘弓(활 궁)’이 있으니 ‘활을 당기는 힘’처럼 주로 물리적으로 센 힘을 나타내고, ‘剛’은 ‘그물 망(岡=罔)+칼 도(刂=刀)’로 이루어진 글자로서 ‘칼로 끊어도 끊어지지 않는 그물의 강인함’ 혹은 ‘얽힌 그물을 칼로 끊어버리는 결단’을 나타낸 글자이다. 주로 정신적 강단(剛斷)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어느 날, 공자가 진정으로 강단이 있는 사람을 못 봤다며 탄식하자, 어떤 사람이 “신정(申棖)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공자는 “신정은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剛)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여기서 ‘욕심이 없어야 강하다’라는 뜻의 사자성어 ‘무욕즉강(無慾則剛)’이 나왔다.

焉:어찌 언, 得:얻을 득(능히 득=能), 剛:굳셀 강.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할 수 있으랴. 23x65㎝.

焉:어찌 언, 得:얻을 득(능히 득=能), 剛:굳셀 강. 욕심이 있으니 어찌 강할 수 있으랴. 23x65㎝.

삿된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야 끝까지 의로움을 지키는 강단을 발휘할 수 있다. 강단과 고집은 다르건만 사욕을 챙기는 사람은 자신에게 이롭겠다 싶으면 의로운 사람의 참된 강단을 잽싸게 고집으로 매도하며 자신의 꿍꿍이를 강단인 양 정당화한다. 벌레와 같은 존재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지키는 확실하고 유일한 길은 ‘무욕의 강(剛)’을 알아보는 국민의 눈이다. 내년 총선에 대비해 이런 눈을 갖추어야 할 때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