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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증 음악가 슈만과 제자 브람스, 그들이 사랑한 클라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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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잠든 클라라 옆에서 아내의 재능을 시기했던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 슈만. [사진 피에이치이엔엠]

잠든 클라라 옆에서 아내의 재능을 시기했던 과거를 뉘우치고 있는 슈만. [사진 피에이치이엔엠]

광증을 앓는 음악가, 그를 보필하는 아내, 그 아내를 사랑한 제자.

막장 드라마 같은 한 줄 요약은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러브스토리로 손꼽히는 로베르트 슈만(1810~56)과 그의 부인 클라라, 제자 브람스의 이야기다. 스승 슈만이 정신병을 앓다 세상을 떠나자 클라라와 그의 아이들을 부양하며 평생 독신으로 산 브람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숭고한 사랑으로 기억된다.

지난달 20일 서울 종로구 서경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슈만’은 이 영화 같은 삼각관계를 담아낸 3인극이다. 1853년 독일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있던 독일 클래식 음악의 거장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슈만 부부에게 젊은 천재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극은 남녀의 삼각관계를 다루지만, 인물 간 갈등을 부각하는 대신 각 인물의 내면 변화를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초·중반부에는 브람스에게 음악적 동지로서의 호감과 이성적 애정을 느끼면서도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쓰는 클라라, 후반부에는 자신과 결혼한 후 피아니스트로서 활발히 활동하지 못한 클라라를 두고 죄책감과 연민을 느끼는 로베르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특히 브람스를 통해 음악적 성취를 느끼며 행복해하는 클라라와, 이를 지켜보며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클라라를 떠날 결심을 하는 로베르트의 연기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슈만 부부는 실제 음악적 동지였다. 다만 어릴 때부터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린 클라라에 비해 로베르트는 결혼 전까지 무명의 작곡가에 가까웠다. 연극 속 로베르트 슈만은 아내의 재능을 시기해 집에 묶어두고, 아내가 지휘자인 자신의 자리를 넘볼까 초조해하는 옹졸한 인물이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아내에게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이라는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집을 떠난다. 죽음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하고 피아니스트로서의 아내의 삶을 되찾아주기 위해 분투하는 로베르트의 마지막 순간을 배우 박상민은 섬세하게 펼쳐 보인다.

클라라 역의 이일화는 절제되고 품위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브람스에게 차츰 마음을 열게 되고 애정을 느끼지만, 끝까지 남편 곁에 남는다. 담담한 목소리로 브람스에게 “당신은 역사가 기억할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작별 인사를 건넨 클라라가 홀로 남겨져 참았던 눈물을 쏟는 장면에서 함께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트로이메라이, 헝가리 무곡 등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특히 클라라가 브람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되찾는 장면 등에서 음악과 스토리가 한 몸처럼 어우러져 진한 여운을 남겼다.

다만 클래식 거장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라이브 연주 대신 MR을 쓴 점이 아쉬웠다는 평,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빠지는 과정이 급하게 전개되면서 동경과 연민 등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다소 평면적으로 느껴졌다는 의견도 있다.

로베르트 슈만 역에는 박상민·원기준·윤서현, 클라라 역에는 이일화·정재은·채시현, 브람스 역에는 장도윤·최성민·최현상이 캐스팅됐다. 박상민은 데뷔 35년 차의 중견 배우지만 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은 다음 달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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