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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없으면 개죽음인가"…6·25 때 억울한 총살, 재판서 진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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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현 소령의 양자인 윤덕한 씨가 7월 세종시 자택 앞에서 윤 소령의 이름이 적힌 육군 7기 동기생 수첩을 들고 있다. 이병준 기자

윤태현 소령의 양자인 윤덕한 씨가 7월 세종시 자택 앞에서 윤 소령의 이름이 적힌 육군 7기 동기생 수첩을 들고 있다. 이병준 기자


“결국 무자식(無子息)은 전쟁에 나가 죽어도 개죽음이란 것 아닙니까.”

6·25 전쟁 때 상급자에 의해 부당하게 총살된 고(故) 윤태현 소령의 양아들 윤덕한씨(73)는 2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라를 위해 죽었어도 친자식이 없으면 그 죽음의 이유를 들춰내고 명예를 회복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아버지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평생을 애썼다. 윤씨 노력으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는 “국가는 윤 소령 유족에게 사과하고 명예회복 조치를 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국방부는 윤 소령에게 전사(戰死)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윤씨는 법원을 찾았다. 지난해 9월, “국가가 수십 년 간 윤 소령의 유족에게 통지하지 않고 유해를 방치해 고통을 겪었다”며 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법원은 윤씨의 청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윤씨를 윤 소령의 자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전경. 연합뉴스

서울고법·서울중앙지법 전경. 연합뉴스

2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932단독 이근영 부장판사는 윤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2억 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혈연관계로 따지면 윤씨는 윤 소령의 조카다. 윤씨는 19살의 나이로 1969년 윤 소령에게 입적했다. 상해임시정부 산하 광복군 출신 윤 소령이 1950년 6·25 전쟁 당시 영주·풍기전투에 참전한 뒤 행방불명된 때였다. ‘만약 전투에서 죽은 게 훗날에라도 확인되면, 누군가는 대를 이어 제사라도 챙겨줘야 하지 않겠냐’는 게 할아버지의 유지였다. 윤씨는 친부가 있었지만, 자식 없는 작은아버지를 아버지로 삼기로 했다.

윤태현 소령

윤태현 소령

윤씨가 ‘아버지’ 윤 소령의 생사를 접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970년이다. ‘윤 소령이 풍기영주 전투 도중인 1950년 7월 17일, 명령 불복종으로 즉결처분을 당했다’는 신문기사를 봤다. 그리고 다시 18년이 흐른 1998년,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다른 소식이 찾아왔다. 윤 소령이 1950년 4월, 6·25 발발을 앞두고 국내에 침투한 북한군을 소탕한 공로를 세워 무성 화랑무공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해 이를 윤씨가 대리 수령했다. 아버지가 죄를 지어 총살됐다는데 무공훈장이 나왔다는 게 이상했던 윤씨는 윤 소령의 병적 증명서를 뗐다. 증명서엔 아버지가 ‘1950년 8월 파면’된 것으로 나왔다.

윤씨는 이때부터 죽음의 진상에 대한 의구심을 본격적으로 품었다고 한다. 충남 공주시 토박이로 농사를 짓고 살던 윤씨는 사비를 들여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을 오가며 6·25 전쟁 기록물들을 들여다보고, 전직 군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윤씨가 낸 진상 조사 신청에 결국 2008년 진화위는 윤 소령이 상급자의 위법한 즉결처분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과거사위는 “전쟁 중이더라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근본인 생명권을 법적 근거 없이 즉결처분한 것은 명백하고도 위험한 인권침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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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윤씨는 윤 소령이 사망한 후에 양자로 입적한 사실이 인정되는바, 윤씨에게 윤 소령 사망에 따른 위자료 청구권이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윤씨 청구를 기각했다. 윤씨를 대리한 김정민 변호사는 “윤씨가 입적됐던 시점은 윤씨가 여전히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로, 어떠한 이익도 바라지 않았다”며“친자식 여부를 떠나 그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파헤치려 애쓰는 동안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청구권 자체가 인정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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