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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현 재판부 안 된다"…극에 달한 이화영의 지연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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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연합뉴스

쌍방울 그룹으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연합뉴스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재판 지연을 위한 몸부림이 먹혀들고 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지난 27일 대법원에 A4 용지 38장 분량의 재판부 기피를 위한 재항고장을 제출했다. 지난달 23일 제기한 재판부 기피 신청이 기각되자 항고했고 이 마저 기각되자 대법원을 찾은 것이다.

이같은 시도에는 노골적인 재판 지연의도가 담겨있다. 변호인들도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이 전 부지사의 변호인인 김광민(경기도의원) 변호사는 지난 8일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정상적으로 하면 (재판부 기피 신청 결과가) 한두 달 정도 걸린다”며 “그럼 내년 (법원) 인사이동 시기와 겹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월쯤 재판이 재개된다고 하면 1월 안에 재판을 마치지 못하기 때문에 다음 재판부가 (선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재판 기피신청 인용으로 재판부가 바뀌든, 아니면 시간 지연으로 재판부가 인사이동을 하던, 무조건 현 재판부는 아니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현 (이화영 대북송금) 재판부는 너무 검찰 편이다. 불공정하다”며 “기피신청이 기각됐으니 재항고를 통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고, 대법원도 불공정 염려가 없다고 한다면 그다음에는 재판 과정에서 불공정한 행위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해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게 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3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측 변호인 김광민 변호사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재판부 기피신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3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측 변호인 김광민 변호사가 경기도의회 브리핑룸에서 재판부 기피신청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이화영 몸부림에 4개월째 재판 올스톱

지난해 10월 28일 시작된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재판은 지난 7월 이후 4개월째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쌍방울그룹에서 법인카드와 법인차량 등을 제공받은 혐의(특가법 뇌물 등)로 처음 구속기소됐고 올해 3월과 4월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관여(외국환거래법 위반)와 쌍방울 법인카드 사용 내역 삭제 지시(중거인멸교사) 등의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파행은 7월 17일 40차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를 변호했던 서민석 변호사가 “(이 전 부지사가) 방북 요청을 한 건 맞다. (이재명) 방북을 한 번 추진해달라는 말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발언한 뒤 시작됐다. 이 전 부지사의 아내 백모씨가 서 변호사에 대한 해임신고서를 법원에 내면서 재판이 멈춰섰다. 법정형이 사형 · 무기 또는 최하 3년 이하의 징역 · 금고형인 경우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42차 공판에 서 변호사 대신 출석한 김형태 변호사가 법관 기피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이 전 부지사가 “내 뜻이 아니다”라는 밝히는 통에 김 변호사가 사임계를 내고 돌연 퇴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 9월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국선 변호인 3명을 직권으로 선임해 재판을 이어가려고 하자 이 전 부지사가 급히 선임해 내세운게 현재 변호인 김광민·김현철 변호사다. 몇 차례 재판 진행을 두고 검찰과 입씨름을 벌이던 이들은 지난달 말 다시 법관 기피 신청서를 낸 뒤 버티기에 들어갔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인 김광민(왼쪽)·김현철 변호사가 지난 10월 23일 경기도의회에서 '법관 기피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역 경기도의원인 김광민 변호사는 ″이 전 부지사가 소위 옥중서신을 2번 썼는데, 옥중서신 내용 자체가 증거 부동의였는데도 재판부에서 채택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인 김광민(왼쪽)·김현철 변호사가 지난 10월 23일 경기도의회에서 '법관 기피 신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역 경기도의원인 김광민 변호사는 ″이 전 부지사가 소위 옥중서신을 2번 썼는데, 옥중서신 내용 자체가 증거 부동의였는데도 재판부에서 채택을 보류했다″고 말했다. 손성배 기자

검찰은 부글부글, 법조계선 “지나친 지연 시도”

 검찰은 재판 장기 파행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전 부지사 측의 재판부 기피신청 전후 행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재판을 지연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했다. “이 전 부지사 측이 불리한 선고 결과를 우려해 법관 기피 신청으로 재판부 쇼핑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위한 검찰 간부는 “이미 50여 차례 진행된 재판에서 법관 기피를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항고에 이어 재항고까지 한다는 건 본인들 마음에 드는 재판부를 찾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 기피 신청은 재판 지연을 위해 일반적으로 구사하는 소송 전술이긴 하지만 이 전 부지사의 경우는 기피 사유 등으로 볼 때 정도가 지나쳐 보인다”며 “기피 신청의 남용이 꼭 필요한 기피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법원의 풍토를 오히려 고착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출신인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 전 부지사 본인도 재판을 받아보니 상황이 쉽지 않은 데다 본인에 대한 판결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추가 기소와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게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최대한 재판을 미뤄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이 파행을 거듭하는 사이 두 차례 추가 구속영장 발부로 늘어난 이 전 부지사의 1심 구속기간 만료 시점(2024년 4월 12일)도 성큼 다가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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