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속 60㎞ 버스, 급정지에 120m 쭉...치사율 높은 겨울철 지뢰

중앙일보

입력

 [2023 안전이 생명이다⑥(끝)] '도로 위 복병' 살얼음

지난해말 광주 서구 제2순환도로 유덕톨게이트에서 승용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뒤집혔다. 연합뉴스

지난해말 광주 서구 제2순환도로 유덕톨게이트에서 승용차가 빙판길에 미끄러져 뒤집혔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오전 6시 40분께 부산광역시 남구와 해운대구를 잇는 광안대교 하판 구간에서 7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오전 5시께 대구광역시 달성군 평촌교에선 15중 추돌사고가 일어났고, 오전 6시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에서 승용차와 화물차 등 차량 13대가 잇따라 부딪혀 3명이 다쳤다.

 또 오전 7시엔 창원시 마산합포구 쌀재터널 방면 예곡교 2차로에서 차량 6대가 뒤엉켜 2명이 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들 지역에 밤사이 눈이 내린 데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도로가 얼어붙은 탓에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겨울철 도로 위 최대 복병은 단연 '빙판길'이다. 쌓인 눈이 추운 날씨에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도로를 살얼음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빙판길이 위험한 건 평소처럼 브레이크를 밟더라도 제동거리가 훨씬 더 길어지는 탓에 추돌사고 위험이 크고, 차량 제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빙판길 사고는 치사율(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도 높다.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섞여 잘 보이지 않는 블랙아이스(빙판). 중앙일보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섞여 잘 보이지 않는 블랙아이스(빙판). 중앙일보

 28일 한국교통안전공단(이하 공단)이 최근 3년간(2020~2022년) 노면 상태에 따른 교통사고를 분석한 결과, 마른 도로에서는 54만여 건의 사고가 발생해 7400여명이 숨졌다. 치사율은 1.4%였다. 반면 서리가 내렸거나 결빙 상태인 도로에서는 2700여건의 사고가 일어나 모두 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치사율은 마른 도로보다 1.5배 높은 2.1%였다. 오히려 눈이 쌓인 도로에서의 치사율은 1.1%였다.

 서리·결빙 상태의 도로에서 치사율이 높은 건 도로상태를 운전자가 눈으로 확인하기 쉽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다소 방심하며 운전하다 사고를 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빙판길(서리·결빙)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를 유형별로 보면 '차대 차'(50.8%)와 '차량 단독'(33.9%) 비중이 높다. 둘을 합하면 84.7%나 된다.

 하지만 마른 도로에선 두 유형의 비중이 모두 합쳐 66.6%로 상대적으로 낮다. 빙판길에서 평소보다 안전거리를 더 길게 확보하지 않고 주행한 탓에 추돌사고가 늘어나고, 속도를 줄이지 않아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사고가 자주 생기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공단이 지난 2021년 말에 실시한 빙판길 제동거리 실험에 따르면 버스가 시속 60㎞로 달리다 급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마른 노면에서는 16.2m를 더 간 뒤 멈춰섰다. 그러나 빙판길에서는 제동거리가 118.7m로 마른 도로보다 무려 6.3배나 더 길었다. 화물차는 6.6배, 일반 승용차도 3.9배나 됐다.

 만약 고속도로 등에서 시속 100㎞로 달린다고 하면 이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진다. 공단이 중형승용차로 실험했더니 마른 도로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제동거리가 42m였다. 반면 빙판길에선 무려 204m를 더 달려나간 뒤에야 정지할 수 있었다. 또 살얼음판 위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도는 현상도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공단과 경찰 등에선 겨울철 빙판길의 위험을 알리고, 요주의 지점도 파악해 주의를 당부하고 있지만 사고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공단 화성체험교육센터의 권지원 부교수는 “빙판길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운전자들이 위험을 다소 간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나는 괜찮겠지라는 생각 대신 늘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주영천고속도로 빙판길 사고 현장. 연합뉴스

2019년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상주영천고속도로 빙판길 사고 현장. 연합뉴스

 공단에 따르면 특히 온도가 낮거나 그늘이 많은 도로에서는 급제동이나 급가속, 급핸들조작은 피해야 한다. 미끄럼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산모퉁이나 터널 끝 지점 등도 요주의 대상이다. 또 빙판길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한 번에 밟지 말고, 2~3번에 나눠서 밟는 게 미끄러짐을 방지하고 제동력을 높이는 요령이다. 앞차와의 거리를 평소보다 멀게 충분히 확보하는 것도 필수다.

 요즘 차량에 많이 장착하는 비상자동제동장치(AEBS, Advanced Emergency Braking System)를 너무 과신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AEBS는 전방에 충돌 위험 상황이 발생할 경우 차량 스스로 이를 감지해 감속 또는 정지하는 첨단 안전장치다.

 이는 공단의 자동차안전연구원이 기상환경재현시설에서 AEBS가 장착된 차량의 기상환경 및 타이어 상태에 따른 교통사고 발생 상황 모의시험을 한 결과에서도 입증된다. 시속 40㎞로 시험한 결과, 야간 및 기상 악화 때는 차량이 장애물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확인됐다. 또 겨울용 타이어를 일 년 내내 쓰거나, 마모된 타이어를 사용하는 경우 AEBS가 작동하더라도 제동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료 한국교통안전공단

 공단 연구기획처의 김학선 책임연구원은 “AEBS는 운전자를 도와주기 위한 보조시스템으로 과도하게 의지해선 안 된다”며 “AEBS가 있더라도 운전자는 항상 운전에 집중해야 하며, 타이어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서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전한 겨울 운전을 위해선 강원도 등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을 오가는 차량은 겨울용 타이어나 우레탄 체인, 스프레이 체인 같은 월동장구를 챙겨두는 게 좋다. 눈이 내리고 쌓인 도로에선 월동장구를 갖춘 차량이 유사시 대응력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가격이 비싸거나 장착이 쉽지는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일단 월동장구를 쓰면 덜 미끄러지고 오르막길도 더 잘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공단의 권용복 이사장은 “겨울에 눈이 오거나 도로가 얼었을 가능성이 큰 상황에선 평소보다 속도를 줄이고, 안전거리도 충분히 확보하는 등 선제적인 안전 운전이 필수”라며 “첨단안전장치를 장착했더라도 사고 가능성에 대한 경각심을 항상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중앙일보 공동기획]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