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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기고] 정의로운 전환은 역지사지에서 출발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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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지남섭 미래와선택성북인포럼 대표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겸임교수

지남섭 미래와선택성북인포럼 대표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겸임교수

역사적으로 인류는 불가항력적 지구 환경에 숙명적으로 순응하며 기술적으로 적응하며 살아왔다. 그런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환경변화가 지질학적 흔적(인류세: Anthropocene)을 남길 만큼 생태위기를 넘어 생존위험으로 다가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환(Transformation)’이 시대적 화두가 되는 이유이며 절박함과 위급함이라는 시대 상황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학계, 시민단체 및 산업계를 넘어 전 지구적 차원에서 많은 논의와 담론이 있으며, 소비자 운동 중심의 시각과 태도의 변화를 촉구하는 인식론적 행동전환, RE-100(재생에너지 100%) 등 구체적 규제를 강제함으로써 탄소중립을 실현하고자 하는 제도적인 이행전환 그리고 탈성장과 생태사회주의로 대표되는 탈성장론, 탈자본주의의 사회경제 구조적 체제전환 등 경로와 목적에 따라 미시적 전환에서 거시적인 전환, 단기적 전환에서 장기적인 전환 및 제도적 전환을 넘어 구조적 전환 등이 혼재되어 있다.

각 담론에 상응하는 대안들의 기대효과와 실현 가능성에 따라 우선순위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으나,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규범의 필요성은 공감한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예를 들어 봉건사회에서 산업자본주의 사회로의 전환처럼, 누구도 기획하지 않고 또는 그럴 수 없었던 체제 전환의 흐름이 있었다. 그런 어쩔 수 없는 흐름 속에 인류는 법과 제도를 바꿔 인권, 재산권 및 공공성을 강화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거역할 수 없는 흐름 속에서 법과 제도를 손질하는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생존을 위한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 열어젖힌 수문을 통해 쏟아지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 댐의 붕괴를 막아야 하는 그런 전환이 간절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기대효과와 실현 가능성을 고려할 때 제도적인 이행전환이 적합하나, 이에 해당하는 에너지 전환과 산업 전환은 새로운 일자리 생성의 표지 뒤엔 기존의 일자리 감축 및 소멸이 본문을 채운다. 이러한 산업군의 노동자들은 일자리 상실에 따른 소득 불안을 넘어 생존 불안으로 이어져 전환에 강력한 저항군이 된다. 따라서 저항군이 지원군으로 되도록 하려면 일자리 및 소득의 불안정을 해결하려는 사회적 함의 내지는 타협이 필요하며 당연히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에서 모색된 ‘정의로운 전환’은 미국의 석유화학원자력노동조합에서 활동했던 노동운동가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의 경험과 제안에서 출발한 것으로, ‘탄소중립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농민·중소상공인 등을 보호하며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방향’을 말한다,

개념을 통해 보듯이 정의로운 전환은 적용 범위에서는 포괄적이어야 하며 지원 면에서는 직접적이어야 한다. 피해 산업군에 속한 노동자를 넘어 연계된 지역사회를 보호해야 하며, 직업 훈련을 통한 이직 보장 및 재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단지, 공론화를 통해 투표 결과로 켜고 끌 수 있는 스위치가 아니며, 그 안에 생존을 위협받는 사람이 있다. 그 어둠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자. 정의로운 전환은 역지사지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구는 무심하다. 어떠한 종이 소멸하든 관심이 없다. 그래서 지구의 위기가 아니라 인간의 위기다. 기온이 올라가서 위기가 오든 환경을 파괴해서 재앙을 맞든 종의 파멸에 연민과 동정은 없다. 자업자득이고 인과응보이며 사필귀정이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할 뿐이다. 위기와 재앙이 욕망과 과학이 만들어낸 문제라면 대응과 해결은 오롯이 사회와 정치의 문제이다. 선한 의지가 아니라 강제된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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