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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카뱅' 등에도 상생금융 압박…중·저신용자 대출 늘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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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금융당국이 시중은행에 자발적 상생 금융안 마련을 요청한 가운데, 인터넷전문은행(인뱅)의 중·저신용자(신용평점 하위 50%) 대출 비중을 지금보다 더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고금리 국면이 길어지면서, 서민금융 공급이 갈수록 줄자 인뱅에 역할을 더 맡기겠다는 의도다.

금융당국·인뱅, 새 대출비중 논의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27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인뱅 3사(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의 새로운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 비중 설정을 위한 협의가 최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서 지난 2021년 5월 금융위원회는 ‘인터넷전문은행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금융당국이 설정한 인뱅 3사의 올해 말까지 평균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는 30%였다. 출범 초기 인뱅 3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이 기대보다 낮자, 매년 연 단위로 대출 확대 계획을 받아 관리하겠다는 의도였다.

이후 인뱅 3사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은 매년 늘었다. 각사 공시에 따르면 3분기 기준 카카오뱅크는 28.7%, 케이뱅크 26.5%, 토스뱅크는 34.5%로 집계됐다. 올해 말까지 카카오뱅크(30%)·케이뱅크(32%)·토스뱅크(44%)가 목표한 비중을 달성하면, 금융당국이 처음 목표한 중·저신용자 평균 대출 비중(잔액기준 30%)을 넘긴다.

“대출 비중 과거보다 늘려라”

서울 영등포구 카카오뱅크 여의도오피스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영등포구 카카오뱅크 여의도오피스의 모습. 연합뉴스

인뱅 3사는 내년부터는 중·저신용자 대출 규제가 완화되길 내심 원했다. 중·저신용자 대출은 고신용자보다 대출 한도가 작고, 연체율이 높아 건전성과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당국 비중 완화보다 오히려 확대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금융당국에서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방향은 신규 대출에서 인뱅 3사의 중·저신용자 비중을 35% 이상으로 높이는 방향이다. 검토 방향대로 추진하면 인뱅 3사 중 토스뱅크를 제외하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는 현재보다 중·저신용자 대출을 더 늘려야 한다. 이와 관련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인뱅과 새 대출 비중 설정을 위해 논의 중인 것은 맞지만, 아직 협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서민금융 감소에…"인뱅 부담 떠넘기기"

케이뱅크 사옥의 모습. 사진 케이뱅크

케이뱅크 사옥의 모습. 사진 케이뱅크

금융당국이 인뱅 3사의 중·저신용자 비중 확대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서민금융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금리 인상 영향에 시중 은행들은 신용도가 낮은 고객을 중심으로 대출을 줄이고 있다.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도 ‘역마진(대출을 해줘도 손해를 보는 상황)’ 우려에 대출 창구를 닫았다.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저축은행의 올해 3분기 민간 중금리 대출 공급액은 1조4235억원으로 1년 전(3조1436억원)과 비교해 54.7% 감소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NICE평가정보 기준 상위 69개 대부업체의 8월 말 기준 신규대출은 95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3066억원)의 30% 수준에 그쳤다. 주요 서민대출 창구가 닫히자, 금융당국이 신사업 인·허가권으로 압박 가능한 인뱅 3사에 중·저신용자 대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체율 급증, 인뱅 혁신 감소 우려

서울 강남구 토스뱅크 본사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토스뱅크 본사 모습. 연합뉴스

인뱅들은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을 일정 수준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지나친 확대는 무리라는 입장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마련한 중·저신용자 대출 목표 비중은 저금리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면서 “금리가 급등하면서 연체율이 오르고 있는데 중·저신용자 비중을 더 늘리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실제 인터넷은행의 8월 말 신용대출 연체율은 평균 1.3%로 같은 시기 전체 은행의 연체율(0.43%) 약 3배다.

지나친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확대가 인뱅의 원래 출범 목표 중 하나인 금융 혁신 역할을 감소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인뱅은 제2금융권 대체자 역할을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기존 은행 산업을 더 발전시키라고 만든 것”이라면서 “중·저신용자 대출 부담이 지나치게 늘면 그만큼 혁신에 투입할 자본력이 감소해 인뱅의 원래 출범 효과를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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