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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저쪽엔 유령조합원"…'대표노조' 놓고 노노갈등 791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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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노동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역 인근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연 금속노조 총파업대회에서 조합원들이 노동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복수노조 사업장에서 교섭대표노조가 되기 위해 서로 조합원 수를 부풀리는 식의 노노(勞勞) 갈등이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지성호 의원실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9년~2023년 10월)간 노동위원회에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대해 이의신청이 제기된 건수는 총 791건으로 나타났다. 2019년 214건, 2020년 88건, 2021년 237건, 2022년 131건, 2023년(1~10월) 121건이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2011년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면서 함께 도입됐다. 사업장에 둘 이상의 노조가 존재하는 경우,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한 노조들은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노조를 정해야 한다. 만약 대표노조를 정하지 못했을 경우에 과반수 노조가 대표노조 지위를 갖는다. 대표노조만이 사용자가 단체협약 등을 진행할 수 있고, 교섭 지위를 갖지 못한 노조는 참여하기 쉽지 않다.

결국 1명 차이로 대표노조가 되느냐 마느냐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 최대한 많은 조합원을 확보하기 위한 노조 간 경쟁은 치열하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 수를 부풀려 신고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이렇게 과반수 여부가 의심되는 경우 상대 노조는 대표노조에 대해 노동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노동위원회가 대표노조 선정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매해 이의신청 접수 건수 대비 인정 비율은 2019년 8.4%, 2020년 25%, 2021년 32.5%, 2022년 23.7%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접수된 이의신청 4건 중 1건이 실제 대표노조 선정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됐던 것이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중앙일보가 이의신청이 인정된 지방의 한 노동위원회 결정문을 입수해 살펴보니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원 수를 부풀린 정황이 확인됐다.

A재단법인 산하 B노조는 조합원 수가 840명이라 신고했지만, 상대 노조로부터 이의신청이 들어와 노동위원회가 확인해보니 803.5명만 실제 조합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36.5명은 허수였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21명은 재직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유령 조합원’이었고, 1명은 이미 노조에서 탈퇴한 조합원이었다. 또한 일부 조합원들은 상대 노조에도 중복 가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노조에 모두 가입해 조합비도 내는 조합원은 각 노조에 0.5명씩 속한 것으로 계산된다.

다만 노동계에선 복수노조 제도 도입 이후 사업장에서 소위 ‘어용노조’를 설립해 기존 노조 교섭권을 빼앗는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표면적으로 노노갈등이지만, 사실상 노사(勞使) 갈등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해 골판지 제조업체 대양판지 임직원 6명이 제3노조를 만든 뒤 기존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하는 등의 부동노동행위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노조 조직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자칫 노조 자율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문제지만, 노조들 스스로도 자정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반대로 교섭노조 단일화 과정에서 사용자가 개입하는 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선 확실하게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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