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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행정망 먹통이 중소기업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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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세계 최고의 디지털 정부라고 자랑하더니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하필이면 디지털 정부 홍보를 위해 해외에 나갔다가 지난 17일 공무원 행정망과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가 마비되는 사태로 급거 귀국했다. 그 후로도 22일 주민등록정보 시스템, 23일 조달청의 국가종합조달전산망 ‘나라장터’, 24일 한국조폐공사의 정부 모바일 신분증 시스템 접속이 한때 중단됐다. 이 와중에 23~25일 부산 벡스코에서 디지털 정부를 자랑하고 유공자를 표창하는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가 열렸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석열 대통령의 축사를 대독했다.

대기업 참여한 사업도 사고 터져
‘공공 SW 제값 치러야’ 인식부터
기업 CTO 같은 컨트롤타워 필요

잇따른 행정전산망 사고의 원인으로 정부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 배제가 도마에 올랐다. 능력 있는 대기업 대신 실력 안 되는 중소기업이 공공 SW 사업을 맡은 탓에 행정망이 삐걱거린다는 거다. 부분적으로 맞을 수 있지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공공 SW 사업의 대기업 배제는 2012년부터다. 소프트웨어진흥법에서 상호출자제한(상출제) 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의 입찰 참여를 막았다. 처음엔 대기업 참여를 완전 봉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완화됐다. 2013년 국방·외교·치안·전력 분야에, 2015년 신기술 분야, 2020년 민간투자형 SW 사업 등에 예외를 인정해 대기업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2018~2022년 5년간 1000억원 이상 사업에서 대기업이 사업 참여를 위해 예외심의를 신청한 19건 중 16건(84.2%)이 통과됐다.

대기업 규제의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공공 SW 시장에서 주사업자로 참여한 중소기업의 비중이 2010년 19%에서 2022년 62.5%로 커졌다. 공공 SW 시장에서 중소기업을 키우고 사업자를 다변화하는 데 기여했다.

대기업 규제로 품질이 떨어졌나. 주장이 엇갈린다. 대기업은 중견·중소기업의 실력 부족을 지적했다. 시스템통합(SI) 대기업 대표 A씨는 “국가 기간 시스템을 볼모로 잡고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잘못된 정책이 국가 IT 시스템을 망가뜨렸다”고 했다. 중소기업은 동의하지 않는다. 공공 SW 분야의 중소기업 대표 B씨는 “이제까지 사고가 터진 정부의 차세대 대형 시스템 사업 중에 대기업이 주관한 사업이 한둘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공 SW도 상품이다. 제값 줘야 좋은 품질이 나온다. 도로나 철도는 예산을 주는 대로 착착 건설되는 게 눈에 보이지만 무형자산인 SW는 볼 수 없다. 그러니 종종 무시되고 관련 예산은 일단 깎고 본다. “정부도 적절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50을 주고 100만큼 일하라고 해서야 되겠는가”(A 대표). “예산은 줄이면서 과업 변경은 수시로 늘어난다. 수없이 설계가 변경되고 설계대로 하는지도 따지지 않는다”(B 대표).

행안부는 네트워크 연결 장치인 라우터 포트 오작동이 행정망 먹통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하드웨어가 문제라는 주장이지만 SW도 안심할 수 없다. 곪을 대로 곪아 터진 지금의 행정망을 두 대표 모두 신뢰하지 않았다. “SW는 집 짓는 거랑 똑같다. 설계도, 시공도 잘못하면 새 집이 제대로 지어지겠나. 비 새고 흔들리는 집이다”(A 대표). “사고는 있을 수 있다. 사고 원인을 제때 파악하지 못하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지도(map)가 없어서다. 어디에서 병이 도졌는지 모르는데 고칠 수 있겠나. 수천억원, 수조원짜리 사업을 하면서 선무당 사람 잡듯 한다”(B 대표).

공공 SW 품질을 높이려면 발주자인 정부가 잘 알아야 한다. 지금 행안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TO)처럼 흩어져 있는 정부의 전산망을 관리하는 책임과 권한을 가진 정부의 CTO가 필요한 것 같다. 정부도 생색 나는 신규 사업만 들여다보지 말고 유지·관리와 보수에도 신경을 더 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