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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총력전' 중 또 인사잡음…용산에 국정원 투서 쏟아졌다 [국정원 수뇌부 교체 전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영국·프랑스 순방에서 귀국한 직후 김규현 국가정보원장과 1·2차장을 모두 교체한 것은 반복되는 인사 잡음 때문이었다. 특히 정부와 기업이 모두 뛰어들어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한 막판 총력전을 벌이는 가운데 최일선에서 관련 정보전을 수행해야 하는 국정원이 공개적으로 기강 해이를 보인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권춘택 1차장,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권춘택 1차장, 김 원장, 김수연 2차장. 국회사진기자단

이번 인사는 북한이 첫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는 등 안보 이슈가 산적한 상황임에도 후임 원장 후보자 지명조차 없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윤 대통령이 해외에서 엑스포 유치를 위해 애쓰는 중에도 국내에서 국정원발 인사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고 논란이 이어지자 수뇌부 전면 교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실제로 오는 28일(현지시간) 개최지 선정 투표가 이뤄지는 프랑스 파리를 비롯, 투표권이 있는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에서는 주재 공관을 중심으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유치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게 외교 소식통의 설명이다.

특히 한국이 접촉한 상대가 알려지면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자들이 곧바로 해당 국가를 다시 방문해 후한 '오일 머니'를 제시하는 등 막판 표 단속이 한창이다. 기밀을 유지하는 동시에 경쟁국의 움직임, 주재국의 판단 변화 여부 등 정보를 모으기 위해 외교관들은 물론이고 파견된 정보관(화이트 요원)들도 발벗고 나선 상황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파리에서 막판 유치전을 펼치는 가운데 기민한 정보전으로 이를 뒷받침해야 할 국정원에서 잡음이 불거져 나온 걸 더 엄중하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국정원장 연말 교체설은 이미 몇 달 전부터 흘러나왔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도 윤 대통령의 결정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교섭 만찬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뉴스1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3일(현지시간) 파리 시내의 한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교섭 만찬에서 환영사를 하는 모습. 대통령실 제공, 뉴스1

전·현직 정보라인에선 국정원 '인사 파동'의 본질을 현 정부 들어서 실권을 잡은 김규현 원장의 측근 그룹과 이에 맞서는 그룹 간의 알력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한 소식통은 "기본적으로 원내에서 꾸준히 기반을 유지해왔던 세력과 지난 정부에서 불이익을 받았던 세력 간의 충돌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김규현 원장은 처음 부임 때부터 권춘택 1차장과 엇박자를 보였다"며 "1차장이 미리 뽑아놓은 비서실장을 김 원장이 몇 시간 만에 측근으로 교체하는 초유의 사태로 원내 분위기가 뒤숭숭했다"고 전했다.

'견제파'를 중심으로 김 원장이 본연의 임무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태를 보였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보라인 관계자는 "김 원장이 VIP 동선이나 관심사, 잠재적인 원장 후보군을 견제하는 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반면 김 원장과 가까운 진영에선 "국정원 내 인사 갈등과 관련한 메시지를 외부로 퍼트리는 배후를 용산에서도 주목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인사에서 1·2차장까지 경질하면서 수뇌부에 공동으로 책임을 물은 것 자체가 이런 인식을 방증하는 것이란 해석을 내놓으면서다.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 전경. 사진 국가정보원

익명을 원한 인사라인 관계자는 "마땅한 후임자가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김 원장이 당초 유임으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도 있었다"며 "하지만 국정원 내 인사 다툼이 최근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표출된 것이 이번 인사의 트리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국정원 내 인사 갈등으로 인해 용산에는 한동안 '투서'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급기야 언론 제보를 통한 폭로전 양상까지 보이자 양쪽 모두에게 책임을 묻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게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정보기관에서 권력 다툼으로 일부만 경질된다면 살아남은 라인이 득세하거나 인사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핵심 수뇌부를 모두 경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정보기관의 인사 갈등이 정부의 국정 동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후임 원장을 물색하는 기준은 정부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핵심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여권 관계자는 "국정원장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직무대행을 맡게 된 1차장에 군 출신을 임명한 것이 충성심 깊은 후임 원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오후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모습. 국정원 제공

김규현 국가정보원장이 27일 오후 국정원 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는 모습. 국정원 제공

한편 김규현 국정원장은 27일 오후 국정원 청사에서 이임식을 갖고 원장직에서 물러났다. 김 원장은 이임사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새 정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고 상당한 결실도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원 직원 모두가 시대적 소명을 인식하고 최선의 역량을 발휘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김 원장은 "대통령의 국가 운영에 가장 중요한 기관인 국정원을 바로 세우고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는데 충분히 기대에 부응했는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면서도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길을 잃고 방황했던 국정원의 방향을 정하고 직원 모두가 다 함께 큰 걸음을 내딛은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기자단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김 원장의 재임 기간 주요 성과로 ▶국정원의 정체성 확립과 조직역량 강화 ▶안보 침해세력 척결 ▶가치동맹과 국익 창출 뒷받침 등을 꼽았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 국정원 1차장에 홍장원 전 영국 공사를, 2차장에는 황진원 전 북한정보국장을 각각 임명했다. 홍 1차장은 윤 대통령이 후임 국정원장 후보자를 지명한 후 국회 정보위원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 전까지 원장 직무대행을 맡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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