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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한 곡, 한우 한 마리로 조각투자? 토큰증권 시장 '기지개' [팩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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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토큰 증권

토큰 증권

‘토큰 증권(ST·Security Token)’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미술품·부동산 등 실물 자산 소유권을 쪼개 파는 ‘조각 투자’ 스타트업이 증권신고서를 잇따라 제출하면서다. 조각투자와 토큰증권 결합으로 새로운 자산 투자 시장이 열릴지 주목된다.

무슨 일이야

26일 투자업계에 따르면 조각 투자 스타트업들이 최근 금융당국에 잇따라 조각 투자 상품 출시를 위한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 지난 16일 뮤직카우는 아이돌 그룹 ‘NCT’의 곡 ‘ANL’을 조각 투자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증권신고서(비금전신탁 수익증권)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미술품 조각 투자 스타트업 열매 컴퍼니도 23일 금감원이 정정 요청했던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펌킨’을 조각 투자화 하는 증권신고서(투자계약증권)를 다시 제출했다. 업계에선 조각 투자 활성화가 토큰 증권 시장 확대로 이어질지 주시하고 있다.

음악 저작권료 청구권 조각투자 스타트업 뮤직카우가 금융 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사진 뮤직카우 홈페이지 캡처

음악 저작권료 청구권 조각투자 스타트업 뮤직카우가 금융 당국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17일 발표했다. 사진 뮤직카우 홈페이지 캡처

토큰 증권이 뭐야

토큰 증권은 블록체인(분산원장) 기술을 도입한 새로운 디지털 형태 증권이다. 실물 증권(종이 형태의 증권), 전통적인 디지털 형태 전자 증권과 달리, 증권을 중앙기관(한국예탁결제원)이 모아서 관리하지 않는다. 대신,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탈중앙화 기법으로 운영한다. 관리비용은 줄이고, 투명성은 높아진다는게 업계에서 주장하는 장점. 지난 2월 금융위원회는 ‘토큰 증권의 발행·유통 규율 체계 정비 방안’을 발표하면서 토큰 증권 발행 절차인 STO(Security Token Offering·토큰 증권 공모) 허용 및 제도화 방침을 밝혔다.

다만, 아직 토큰 증권에 대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지 않아 현재로선 토큰 증권을 사고 팔 수는 없다. 윤창현 의원(국민의힘)이 지난 7월 토큰 증권·조각 투자의 발행과 유통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법안(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계류 중이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이게 왜 중요해

투자 업계에선 토큰 증권이 조각 투자와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각 투자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 다양한 실물 자산 소유권을 잘게 쪼개서 각종 형태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자에게 나눠 파는 투자 방식이다. 지난해 10월 제도권에 편입됐다. 금융위는 지난 2월 조각 투자 기업이 토큰 증권 형태에 한해서 직접 증권을 발행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실물 증권이나 전자 증권 형태로 발행하려면 증권사를 찾아가 각종 복잡한 공모절차를 거쳐야 한다. 반면, 토큰 증권 형태로 발행하면 이 절차를 대폭 줄일 수 있다. 관련 법이 개정되면, 미술품이나 한우 등 다양한 실물 자산을 빠르게 발굴해 토큰 증권 방식으로 출시하는 조각 투자 스타트업이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주도권 싸움 시작되나

뮤직카우, 열매컴퍼니 등 조각 투자 스타트업이 최근 활발하게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잠잠했던 토큰 증권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에선 조각 투자 스타트업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재개되면, 토큰 증권 시장을 선점하려는 시장 내 주도권 싸움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토큰 증권 형태로 조각투자 증권을 판매하려는 스타트업과, 거래 중개를 전담해 수수료 수익을 얻으려는 증권사가 이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토큰 증권 시장은 2030년까지 약 37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협력 관계인 조각투자 스타트업과 증권사가 미래에는 조각투자 상품 판매를 두고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조각 투자를 위한 증권 발행과 유통은 이해관계 상충 방지를 위해 한 회사가 동시에 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 당국은 시장 활성화를 위해 A 증권사에서 토큰 증권 형태로 발행한 조각 투자 증권을 B 증권사를 통해 유통하는 건 가능하다는 식의 가이드라인 해석을 허용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증권사 STO 사업 준비 담당자는 “양질의 조각투자 상품이 나와야 유통 시장도 활발해지기 때문에, 증권사도 토큰 증권 상품 개발과 발행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그래서, 잘 될까

토큰 증권의 시장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토큰 증권 시장을 이끌 조각 투자 스타트업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처럼 (조각 투자 시장으로 돈이 몰릴 만큼) 시장의 유동성이 크지 않은 상황”이라며 “특히나 조각 투자 증권으로 발행하는 실물 자산인 미술품, 한우 등에 대한 가치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