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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필균의 퍼스펙티브

스웨덴처럼 포괄적 사회 개혁만이 인구위기 해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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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출산율 0.7명 붕괴 위기와 그 대책

신필균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이사장·스웨덴 전문가

신필균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이사장·스웨덴 전문가

합계 출산율이 2022년 0.78명에 이어 올해 상반기 0.70명으로 떨어져 또다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르면 연내에 0.6명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한민국 소멸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군나르 뮈르달(Myrdal)과 1982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알바 뮈르달 부부는 그들의 책 머리에서 “인구 문제는 그 어떤 사회문제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하고 “이 위기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고 끝을 맺었다.

한국의 출산율은 2013년에 이미 1.19명으로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에 못 미치는 최저 수준을 보였고, 계속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2018년에는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인 2.1명의 절반도 안 되는 0.97명으로 떨어졌다.

저출산은 사회·경제적 중대 위기인데도 아직 전통 사고에 갇혀
380조 쏟아 부은 한국, 가장 손쉽고 게으른 방법으론 해결 난망
스웨덴, 여성·가족 위한 노동시장 대대적 개혁으로 저출산 탈피
한국도 정부·기업·가정에서 불평등·불합리한 제도와 문화 바꿔야

세계적 패턴 벗어난 한국 출산율

퍼스펙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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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저하는 첫 아이를 낳는 여성의 평균 연령이 높아진다는 의미인데, 한국은 초산 연령이 2022년 33세로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물론 출산율 하락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OECD 선진 산업 국가들의 출산율도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다. 경제 발전 및 사회 변화와 함께 여성의 사회 진출이 높아질수록, 또 노동시장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출산율은 하락한다. 그래서 출산율은 대체로 완만한 굴곡 현상을 반복해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패턴을 벗어나 계속 급속히 감소하는 예외적인 모습을 보여 큰 문제다. 이처럼 가팔라지는 한국의 저출산 현상을 어떻게 반전시킬 수 있을까.

전통 논리에 갇힌 저출산 이슈

먼저 평범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여성 한 명당 자녀 2명 이하의 출산이 왜 주요 사회 문제가 되는가. 심각한 저출산은 노동력 감소와 인구 구조의 변화가 야기하는 사회·경제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한국이 그동안 세계가 경탄할 정도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것은 세계시장 논리를 과감하게 수용하고 성공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출산 같은 사회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도 전통적·가부장적 논리에 갇혀 있다. 경제발전은 세계적 논리 속에서 찾으면서, 왜 출산과 여성 문제는 전통적 사고에 갇혀있나. 자녀를 가질 것인지 아닌지 결정은 솔직히 여성 의지에 달렸지 않은가.

결혼·출산·육아 문제는 사회·경제적 사안임과 동시에 사회·문화적 사안이다. 한국문화는 아직 결혼이 선행되고 자녀를 가져야 ‘정상 가족’으로 여긴다. 그래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데 여전히 인색하다.

“한국, 결혼에 대한 정의 다시 해야”

특히 비혼모 가족의 사회적 인정을 비롯해 이들에 대한 공적 서비스는 매우 취약하다.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학 명예교수는 비혼 출산에 대해 “도덕·비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너그러운 관점으로 혼전 동거 등을 바라보고 결혼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해야 한다”면서 한국의 전통적 사고를 꼬집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혼외 출생자가 30%나 된다. 향후 이들을 제외하고 저출산 정책을 논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만큼 발전한 한국사회는 이제 결혼관과 여성관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2005년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래 이제 다섯 번째 정부를 맞았다. 그동안 투입된 예산은 3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다. 인구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한 윤석열 정부는 주요 열쇳말을 ‘저출산’에서 ‘인구 문제’로 바꾸고,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발표된 5대 과제는 지금까지 실패한 역대 정부의 접근 방식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스웨덴 여성은 일하며 아이 키워

OECD 국가 중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최상위권이면서 동시에 출산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스웨덴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스웨덴은 20세기 산업화 초기 심각한 출생아 수 감소가 이어지자 당시 경제학자이며 교육학자였던 뮈르달 부부는 『인구 위기』란 책을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출산율 감소의 해결책을 빈곤과 불평등 해소에서 보았다. 특히 일하는 여성들과 그 가족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의 대대적 개혁을 제시했다. 이를 받아들인 당시 스웨덴 정부는 직장에서 출산 불이익주기 금지는 물론 육아 기간의 임금 소득 손실을 보상하는 독특한 사회보장 정책을 설계했다.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기업문화가 뒷받침하지 못하면 성과는 없다. 스웨덴 정부는 사회 가치관 변화에 영향을 주도록 노력했다. 예를 들면 ‘모성 보호’ 정책에서 ‘부모 보험’ ‘부모 휴가’제도를 도입해 정책 개념의 변화를 가져왔다. 현행 가족정책에는 부모 휴가가 480일로 돼 있는데, 부모 중 어느 한 명은 의무적으로 3개월을 사용하도록 단서를 달았고, 반반을 나눠 사용하면 보너스를 인정했다.

연년생 낳으면 더 많은 혜택 부여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스웨덴은 연년생으로 아이를 출산하면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부모 보험에 이득이 가도록 설계한 점이 눈에 띈다. 적어도 2명을 낳도록 유도한 정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부부 합산 과세’를 ‘부부 개별 과세’로 대체해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유리하도록 배려했다. 자녀 수와 소득에 비례한 주거보조금을 도입해 다자녀 가족에게 혜택을 줬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정책을 대폭 개혁해 임신과 출산 시에 일자리 보호와 편익을 제공하고, 아동 친화적 기업문화 등 기업의 적극적 협조를 끌어냈다.

스웨덴 사례를 종합하면 출산과 육아에 관한 보호와 책임을 정부·기업·가정(개인)의 세 단위가 공동으로 지는 제도다. 이렇게 했더니 약 반세기 동안 스웨덴의 출산율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90년에는 2.13명까지 치솟았고, 경제 상황에 따라 굴곡을 보이면서 2022년에는 1.52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아동친화적 기업 문화 확산 필요

저출산 현상을 극복해야 하는 한국사회는 지금 스웨덴이 겪은 20세기 초 가구 및 남녀 간 불평등 문제와 함께 21세기 청년층의 ‘직업 우선’에서 밀려난 ‘결혼 포기’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해법은 미래 노동시장의 인력을 양적 증대에서 질적 향상으로 극대화하는 일이다.

한국 사회는 출생아 수의 감소에는 몹시 민감하면서도 정작 이미 태어난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관심은 매우 미약하다.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정인이 사건’을 비롯해 아동학대 의심 사례는 매년 수만 건이나 된다. 한국은 고립·은둔 청소년 증가와 청년 자살률도 OECD 국가 중 1위로 이 또한 심각한 문제다.

청년을 위한 좋은 일자리 마련, 좀 더 아동 친화적이며 남녀가 평등한 직장 문화를 위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야 한다. 넉넉한 육아 휴가는 물론 자녀가 아플 때 부모 중 한 사람은 쉴 수 있는 관대한 직장문화와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특히 지방정부는 1970년대 스웨덴이 보여준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기본 정신을 갖춰 아이가 어디서나 편히 자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출산·취업 중 선택 강요 말아야

여성인력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젊은 여성은 세계에서 고등 교육을 가장 많이 받은 집단이며 이들은 노동시장 참여를 통한 자아실현 욕구가 강하다. 최근 한국 여성의 이공계 진출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 문제는 졸업 후 취업률이다. 국가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질 높은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현존하는 노동시장의 진입 및 승진 등에서 가부장적 요소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여성들이 더는 출산과 직업 중 선택을 강요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사회제도와 문화가 이런 여성의 사회적 욕구를 존중하고 이것이 가능한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어떤 인구정책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노동경제학자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골딘 하버드대학 교수는 한국의 기록적 저출산율에 대해 가부장제의 혁신과 여성의 고용안정 등 일터에서 성적으로 평등한 환경을 과감하게 조성하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유자녀 가족을 위해 노동정책과 가족정책의 연계망을 무엇부터 바꿀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유자녀 가정이 안정적으로 보일 때 청년층의 가족 형성에 대한 계획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다.

한 국가의 노동시장 정책과 가족 정책은 여성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책요인이 된다. 다른 어느 선진국에서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돈 푸는 정책’은 양산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출산장려금은 가장 손쉽고 게으른 방법이다. 출산율을 높이는 비결은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문화를 포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지름길이다. 담대한 개혁의 골든 타임이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어 안타깝다.

신필균 사무금융 우분투재단 이사장·스웨덴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