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쉽지 않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이승엽(47) 감독은 '감독 첫 시즌에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이렇게 답했다. KBO리그를 지배했던 역대 최고 홈런 타자에게도 프로야구 감독이란 예측 불가능한 가시밭길이다.
마무리 훈련이 모두 끝난 지난 2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성향과 성격이 다른 70~80명 이상의 선수와 스태프를 한마음으로 모으는 게 무척 힘든 일이더라"라며 "선수 때는 내 것만 잘하면 됐는데, 감독이 되니 그렇지 않았다. 1년간 많이 배웠고, 지금도 배워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감독은 지난해 말 두산과 3년 총액 18억원에 계약했다. 삼성 라이온즈 영구결번(36번) 레전드와 두산의 깜짝 만남에 야구계가 들썩였다. 감독 첫 시즌 성과도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9위에 그쳤던 팀을 5위에 올려놓았고, 두산 구단 역대 최다인 11연승 기록도 작성했다.
다만 시즌 막바지엔 아쉬움도 남았다. 치열한 3~5위 싸움을 벌이다 마지막 순간 5위로 밀려났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선 4위 NC 다이노스에 완패해 가을야구를 1경기 만에 끝냈다. 정규시즌 최종전이 끝난 뒤 일부 홈팬에게 야유를 받은 기억은 여전히 무거운 짐으로 남아 있다. 선수 시절 환호와 박수에 익숙하던 '국민 타자'가 처음으로 싸늘한 시선의 한복판에 서 있어야 했다.
이 감독은 "홈팀 감독이 홈팬에게 야유를 받았는데, 충격을 안 받으면 이상하다. '팬들이 정말 아쉬우셨구나' 싶었고, '내가 많이 부족하구나' 실감했다"고 했다. '초보 감독치고 잘했다'는 주위의 격려도 통하지 않았다. 이 감독은 "1년 차라고 내 부족함을 용납할 순 없다. 여러 차례 (더 올라갈) 기회가 왔는데 살리지 못했다. 팬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며 "내년 시즌은 더 철저히 준비해서 야유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포커페이스의 소유자다. 늘 침착해 보이는 얼굴로 더그아웃을 지킨다. 속내는 그렇지 않다. 경기에 진 날이면 숙소 불을 끄고 홀로 조용히 앉아 불면의 밤을 보내곤 했다. "TV를 틀면 야구 하이라이트가 나오고, 휴대전화를 보면 인터넷 속 기사를 찾게 돼 다 멀리했다"며 "오히려 이긴 경기의 기쁨은 오래 안 가는데, 아쉽게 진 패배의 기억은 더 오래가더라"고 털어놨다.
감독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때로는 말 못할 속사정 탓에 욕을 먹어야 할 때도 생긴다. 이 감독은 "밖에서 볼 땐 야구가 참 잘 보였는데, 안에 들어와 보니 갑자기 이런저런 변수가 생겨 뜻대로 할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더라. 그런 점이 힘들었던 건 사실"이라면서도 "모든 건 핑계일 뿐이다. 결정은 내 몫이고, 야구는 선수가 한다. 그 선택이 실패하면 내 탓, 성공하면 선수 덕분"이라는 지론을 강조했다.
이 감독은 여전히 웬만한 선수보다 더 큰 관심을 받는다. KBO리그 42년 역사에서 손꼽히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니, 필연적인 일이다. 내년에도 이 감독은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감내해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맞대결도 그중 하나다. 이 감독에 앞서 8년간 두산을 이끌었던 김태형 감독이 롯데 자이언츠 새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이 감독은 일단 "김 감독님은 대선배이시고, 명감독님이시다. 롯데전에서 한 수 배운다는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그러나 "절대 지지 않겠다"는 의지는 분명히 했다. "프로라면 마흔살이든 스무살이든 누구나 똑같이 '이긴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서야 한다. 나 역시 경기장 안에서만큼은 김 감독님께 지고 싶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많이 이기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올해 29년 만의 우승 축배를 든 '옆집' LG 트윈스와도 내년엔 더 잘 싸울 생각이다. 이 감독은 "올해 LG를 상대로 너무 못했고(5승 11패), 상위권 팀들에게 전체적으로 약했다. 더 높은 곳에 가려면 상위권 팀들과의 경기에서 더 많이 이겨야 한다"며 "올해 5위를 했으니, 내년에는 3위 이상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막 전까지 준비를 잘해서 선수들과 함께 더 위로 올라가겠다"고 거듭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