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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발사 첫날 괌 찍었다고? "김정은의 오버"란 신원식의 근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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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북한이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로 부산에 정박한 미국의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포함해 한반도 일대를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위성 발사 직후부터 연일 송·수신 능력을 대외에 과시하는 모양새인데, 대내 결속을 위해 감시·정찰 능력을 과장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일 오전 10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궤도에 진입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작동상태 등을 료해(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2일 오전 10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종합관제소를 방문해 궤도에 진입한 정찰위성 '만리경-1'호의 작동상태 등을 료해(점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적측 중요 표적 촬영"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5일 "김정은 동지께서 25일 오전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 종합관제소를 또다시 찾으시어 오전 9시 59분 40초부터 10시 2분 10초 사이에 정찰위성이 적측 지역의 진해, 부산, 울산, 포항, 대구, 강릉 등 중요 표적 지역들을 촬영한 사진들을 보셨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정찰위성이 10시 1분 10초에 촬영한 사진에는 부산시 남구 용호동에 위치한 군항에 정박해있는 미 해군 핵 항공모함 '칼빈슨'호도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또 김정은이 "평양시간 25일 새벽 5시 13분 22초 정찰위성이 미국 하와이 상공을 통과하며 진주만의 해군기지와 호놀룰루의 히캄 공군기지 등을 촬영한 사진들도 보시였다"고 보도했다.

다만 정찰위성으로 포착했다는 칼빈슨함의 부산 입항은 당일인 지난 21일부터 언론을 통해 이미 공개됐다. 북한은 이날 정찰위성이 촬영했다는 지역에 더해 촬영 시각을 초 단위로 밝히면서도 실제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찰 위성의 구체적인 역량이 노출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 뉴스1.

조악한 역량 이미 드러나

실제 앞서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나 한ㆍ미가 습득한 부품을 보면 북한이 개발 중인 군사정찰위성은 조악한 수준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실패로 돌아간 북한의 1차 정찰위성 발사 당시 군이 서해에 떨어진 부품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해상도 3m 수준으로 확인됐다. 가로, 세로 3m 물체를 한 점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정찰위성으로 가치가 있으려면 해상도가 1m급 이내, 즉 '서브미터'급이 돼야 한다.

또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은 지난해 12월 위성시험품 탑재체에서 촬영했다며 흑백 사진을 공개했는데 한강 교량과 용산 일대, 인천 항만 등 남측 지역이 흐릿하게 담겨 있었다. 이에 '군사정찰위성으로는 효용이 거의 없다'는 국내 전문가 비판이 쏟아지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나서서 "개나발들 작작하라"고 쏘아붙였다. 북한은 이후부터 위성 촬영 사진을 더는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 단계의 중요 시험을 했다"고 밝히며, 위성시험품 탑재체에서 촬영했다고 공개한 인천과 서울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북한 국가우주개발국이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개발을 위한 최종 단계의 중요 시험을 했다"고 밝히며, 위성시험품 탑재체에서 촬영했다고 공개한 인천과 서울 사진.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연일 관제소 가서 직접 확인 

북한이 보유한 군사정찰위성의 효용성과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 이어지는 가운데, 북한은 지난 21일 발사 성공 이후 연일 "만리를 굽어보는 눈"을 가졌다는 점을 과시하고 있다. 김정은은 발사 이튿날인 지난 22일부터 24일, 25일까지 나흘간 세 차례에 걸쳐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 평양 종합관제소를 찾아 위성이 촬영한 사진을 직접 확인했다. 북한은 다음 달 1일부터 정찰위성이 정식 임무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22일 '특집 KBS1 라디오 저녁'에 출연해 북한의 성공 보도는 "과장됐다"며 "정상 궤도에 진입하더라도 정상적인 정찰 임무를 수행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 이튿날 괌 일대 사진을 촬영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신 장관은 "괌 사진을 찍었다는 것은, 위성 분야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발사) 첫날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김정은이 굉장히 기쁜 나머지 좀 오버(과장)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공헌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보도했다. 류상훈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장이 김 위원장의 딸 주애에게 거수경례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3일 정찰위성 발사 성공에 공헌한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보도했다. 류상훈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장이 김 위원장의 딸 주애에게 거수경례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연말 내부 결속 의도

북한이 지난 5월, 8월에 이어 세 번의 도전 끝에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한 직후 열띤 선전전에 나서는 것과 관련해 주민들에게 치적을 홍보하기 위한 의도도 상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말에 열릴 것으로 전망되는 당 전원회의에 정찰 위성 발사 성공을 최대 성과로 보고하고 추가 발사 계획을 구체화할 수도 있다.

실제 김정은은 지난 23일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을 방문해 과학자, 기술자, 간부 등을 격려하며 "당이 제시한 항공우주정찰능력 조성의 당면 목표와 전망 목표를 향해 총매진해나가자"고 말했다. 이어 같은 날 저녁 목란관에서 기념 연회를 열었는데, 공개된 사진을 보면 아내 이설주, 딸 김주애와 과학자들이 'DPRK NATA 국가항공우주기술'이라는 로고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DPRK는 북한 국호의 영문 약자고 NATA는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의 영문 약자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경축하여 지난 23일 목란관에서 북한 정부의 명의로 마련한 연회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내 리설주, 딸 주애과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이 정찰위성 발사 성공을 경축하여 지난 23일 목란관에서 북한 정부의 명의로 마련한 연회가 진행됐다고 조선중앙TV가 24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아내 리설주, 딸 주애과 함께 연회에 참석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 정찰위성은 군사적 목적 뿐 아니라 정치적 목적도 매우 크다"며 "주민들에게 드디어 정찰위성을 확보함으로써 억제력과 방어력을 상당히 강화했다는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선대에 달성하지 못한 '우주 강국'의 꿈을 김정은 시대에 쟁취했다고 선전해 우상화 시도까지 노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의 정찰위성 역량이 아직 충분치 않은 수준으로 관측되는 데다 아직 군사적 위협보다는 내부 선전에 치중하고 있지만, 매일 북한의 '눈'이 최소 두 차례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는 건 부담이라는 지적이다. 또 정찰위성이 안정화 상태에 접어들면 부품 조정 과정 등을 거쳐 카메라 해상도가 향상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단기간 내 기술 향상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이를 기반으로 내년 중 추가 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할 수도 있다. 국내에 배치된 주요 전력의 위치와 이동 양상 등이 북한에 노출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6일 실시간 위성 추적 웹사이트 엔투요(n2yo)에 나타난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의 궤적. 엔투요 캡처.

26일 실시간 위성 추적 웹사이트 엔투요(n2yo)에 나타난 북한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의 궤적. 엔투요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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