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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밀어봐야 경제 도움 됩니꺼" "열렬한 지지 옛말" 쓴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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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04면

심상찮은 대구 민심 르포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 서문시장이 지난 21일 오가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김준영 기자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대구 서문시장이 지난 21일 오가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김준영 기자

“국민의힘 밀어줘 봐야 대구 경제에 뭔 도움이 됩니꺼. 인자(이제는) 나이 든 사람만 맹목적으로 좋아하지예.”

지난 21일 동대구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김성철(54)씨는 국민의힘을 향한 대구의 열렬한 지지는 “옛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구 토박이로 보수 정당만 찍어왔다는 그는 “대구 경기가 다 죽어뿟는데 여당은 뭐하고 있습니꺼”라며 “가만 보이 차라리 호남에 척척 기업 끌고 가는 민주당이 정치인으로는 더 낫다 안 캅니꺼”라고 말했다. ‘대구의 강남’이라는 수성구에서 20년간 자영업에 종사해 왔던 김씨는 경기 악화를 버티지 못하고 6개월 전부터 택시기사로 일하며 ‘투잡’을 뛰고 있다고 했다.

‘보수의 심장’ 대구가 심상찮다. 지난해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차이로 신승했을 때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지(75.1%)를 보여준 대구지만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선 윤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50% 안팎까지 떨어졌다. 이런 현상에 대해 대구 달서을에서 3선을 한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총선을 앞두고 TK(대구·경북) 주민들이 걱정을 넘어 회초리를 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 여권 인사들의 대구행 발걸음이 잦아지는 것도 대구 민심이 결코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 한 달 새 윤 대통령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물론 신당 창당설을 띄운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총선 출마설이 거론되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등이 앞다퉈 대구를 찾았다. 이 전 대표는 26일에도 측근인 천아용인(천하람·허은아·김용태·이기인)과 대구를 또 찾겠다고 했다.

실제로 중앙일보가 지난 21~22일 현지에서 들어본 대구 민심은 매우 불안정했다. 여권 지지가 여전한 사람이 많았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수사, 이념 전쟁, 이준석 신당, 한동훈 출마설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대구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민심이 싸늘해진 건 분명한데 그 원인이 하나로 뚜렷하지 않으니 명쾌한 해법을 찾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구에서도 ‘보수의 성지’로 불리는 서문시장 상인들조차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손님이 없어 신경이 날카롭다”며 인터뷰 자체를 거부하는 상인들도 적잖았고, 입을 뗀 이들은 하나같이 팍팍해진 살림살이를 주제로 핏대를 세웠다. 구체적으로는 “경기가 나빴던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현재 여권이 민생을 살피려는 데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는 게 핵심이었다.

시장에서 10여 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박모(49)씨는 “대통령이 맨날 해외 다니고 누구 수사하고 그러는데 그게 대체 우리 대구 살림에 어떤 도움을 줬느냐”며 “문재인 정부랑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이 엉뚱한 짓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인들 중엔 정부가 바뀌어도 지속되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최하위’라는 대구의 꼬리표를 분노 요소로 꼽는 이들도 많았다.

20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 중인 김이수(55)씨는 “우리 같은 서민들은 잘살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뿐인데 대통령은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며 “특히 멀쩡히 있던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왜 치우겠다고 한 건지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 서민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이 민생엔 관심이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신당 창당을 화두로 띄운 이 전 대표를 대하는 여권 태도에 불만인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전 대표가 “대구 기반 신당을 창당해 영남에서 최소 30석을 확보하겠다”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당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결국 여권이 자초한 일”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상당수였다. 장년층은 그동안 여권이 “이준석을 확실히 못 쳐낸 우유부단함”을, 청년층은 “청년 정치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을 분열의 씨앗으로 봤다.

이기영(76)씨는 “이준석이는 총구를 아군한테 돌려가꼬 맨날 이쪽만 쏘는 버르장머리 없는 자슥”이라며 “대구에서 신당 차려봐야 성공 확률은 ‘꽝’입니더”라고 말했다. 김한승(68)씨도 “한번 도망가서 받아줬으면 됐지, 서양 사람(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또 몰랑하게(물렁물렁하게) 갸를 품겠다 카데예”라며 “국민의힘이 망하더라도 우아래 없는 금마 받아주면 클 납니더”라고 했다.

반면 경북대 인근에서 만난 경북대 3학년생 박모(22)씨는 “대선 승리에 기여하고 2030을 국민의힘에 유입시킨 이 전 대표를 토사구팽하는 걸 보고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최모(30)씨도 “여당은 ‘네가 창당해 봐야 망한다’며 이 전 대표를 비웃기만 하는데 본인들이 망해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세대와 상관없이 “밉든 곱든 이준석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지난 9월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이재명 대표 수사에 대한 실망감도 컸다. 동성로에서 만난 이주헌(38)씨는 “이 대표는 형수한테 쌍욕 하고 대장동에서 비리 저지른 악질인데 왜 아직도 못 잡아넣어서 저렇게 뻔뻔하게 돌아다니게 하느냐”며 사법부는 물론 현 정부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반면 “맨년째(몇년째) 이재맹이 털어도 못 잡아 넣을끼면 고마하고 경제나 챙기라”며 쓴소리하는 여성도 있었다.

여론이 요동치는 상황에도 “대구의 싸늘해진 민심은 정부가 더 잘하길 바라는 채찍질”이란 밑바닥 정서는 여전했다. 군밤 가게를 하는 김준승(60)씨는 “대통령이 혼자서 해외 나가 달러 수주해 오는 걸 보면 역대 대통령 중 최고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본다”며 “다만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쓴소리하는 참모가 없는 게 문제다. 주변을 싹 다 갈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40년 단골집’이라고 적힌 인증 사진이 걸려 있는 중앙로 국밥집에서 만난 강현(55)씨는 “전 정부가 싸질러 놓은 여러 똥 때문에 윤 대통령이 애를 먹는 게 너무 안쓰럽다”며 “호남이 민주당을 밀듯 대구는 대통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46)씨도 “최근 여권 인사들이 잇따라 대구를 찾는 건 대구를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는 것 아니냐”며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힘센 여당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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