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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일자리 없어” 15~29세 청년 41만명 그냥 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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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6호 10면

니트족 우려되는 청년 급증 

“쉬지만 쉬는 게 아니죠.”

민지영(가명·26)씨는 쉰 지 햇수로 2년차다. 대학 졸업 후 ‘진로 찾기’를 하고 있다. 민씨는 “정부지원금을 받아 컴퓨터 수업도 들어봤지만 취업까진 이어지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강소희(가명·29)씨는 간호대 전공을 마치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몇 개월 전 그만뒀다. 3교대의 업무가 생각보다 힘들었고 원하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간호전공 특성상 대개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하다보니 다른 진로를 알아볼 기회는 극히 드물다.

이들 같은 ‘쉬었음 청년’은 올해 41만명에 달한다. 15~29세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청년 중 지난 한 주간 ‘그냥 쉬었다’고 응답한 경우다. 평균 잡아 41만명의 청년이 그냥 쉬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39만명에서 5.1% 증가했다. 코로나 이후 3년 간 감소세를 보이다 올해 반등했다. 이들은 어떤 정규교육 과정에도 속하지 않고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는 상태의 미취업자 청년을 뜻하는 니트(NEET)족과도 개념이 다르다. 육아·가사를 한 경우는 제외되고, 구직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어 ‘구직 단념자’라고 할 수도 없다.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도 않아 그 실태가 피부에 잘 와 닿지도 않는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럼에도 ‘쉬었음 청년’ 증가를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언제든 니트 상태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욱 한국노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 해도 이들이 노동시장으로 빠르게 진입하지 못해 적체할 경우 근로의욕 상실로 이어질 여지는 다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쉬었음 청년’을 보면, ‘20대 초반, 여성, 대졸’ 위주로 늘었다. 전년 대비 20대 초반은 1만6000명, 여성은 1만5000명, 대졸은 2만8000명 각각 증가했다. ‘20대 후반, 남성, 고졸’에서 주로 나오던 기존 패턴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처럼 ‘쉬었음 청년’이 늘어난 이유로는 ‘코로나 효과’가 가장 먼저 꼽힌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실장은 “올해 ‘쉬었음 청년’의 70%가 대체로 전직이 있는 경우였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 코로나 이후 배달 수요가 줄면서 라이더 채용이 감소하거나, 임시선별소와 같이 보건의료분야에서 종사하던 직종이 번아웃으로 쉬는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기준 배달 일자리 공고는 전년 대비 70%가량 줄었고, 같은기간 20대 플랫폼 종사자 수는 11.3% 빠졌다. 대졸 ‘코로나 학번’이 제대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김기헌 실장은 “20대 초반, 대졸의 경우 코로나 시기 비대면 수업을 받고 졸업한 청년”이라며 “비대면 활동으로 선후배, 교수간 네트워크 쌓는 게 어려워져 경력·수시채용에서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의 도움을 못 받은 것도 노동시장 진입을 늦췄다”고 분석했다. 조대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졸업하자마자 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괜찮은 일자리’의 진입 장벽이 풀리지 않자 준비 기간은 길어지고 쉬는 상태가 된다”며 “20대 초반에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가 많은 여성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장기간 쉰 청년 비율은 점차 늘고 있는 것도 적신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년 이상 쉬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4.2%(15만2000명)로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로나 이전인 2018년(35.6%, 8만3000명)보다 8%포인트가량 높아졌고 숫자로는 거의 두배가 됐다. 같은기간 3년 이상 쉬었다고 한 청년도 13.3%에서 17.8%로 늘었다. 조대연 교수는 “미취업기간 3년 이상이 되면 6개월 미만일 때보다 구직활동하는 비중이 53%에서 36.5%로 떨어진다”며 “쉬고 있는 상태가 장기화하면 구직의욕이 떨어져 니트 상태가 될 수 있다. 특히 청년 니트는 결혼, 출산까지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전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단기적인 코로나 효과를 제외하면 ‘쉬었음 청년’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자리 미스매치’다. 청년들은 ‘쉰 이유’로 ‘원하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서(32.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다음일 준비를 위해’(23.9%)였다. 전년 대비 각각 4.7%포인트, 4.4%포인트 높아졌다. 실제로 ‘쉬었음 청년’의 78%가 이직준비자다. 상당수가 첫 일자리를 ‘징검다리 직장’ 삼아 원하는 일자리로 가려는 경우다. 하지만 경기 침체기로 기업이 경력직, 수시 채용 위주로 전환하면서 이들이 소위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직 정기공채는 17.4%에 불과하지만, 수시·상시채용은 52.5%다. 대기업 정기공채는 최근 4년간 가장 적었다. 실제 24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청년 일자리는 3분기 연속 감소세다. 2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20대 이하 일자리는  6만8000개(2.1%)가 줄었다.

전문가들은 ‘원하는 첫 일자리’에 갈 수 있도록 조기 지원제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기헌 실장은 “한국은 영미처럼 ‘이직을 권하는 사회’가 아니다보니 스카우트를 통한 상승 점프가 어려워 청년에게 ‘첫 일자리’가 그만큼 중요하다”며 “정부가 고등학교·대학교 재학 단계부터 조기 개입해 학교 졸업부터 노동시장 진입까지의 시간을 줄이는 게 쉬는 청년을 줄이는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연합(EU)의 ‘유스 개런티’처럼 정부·지자체가 청년 취업을 함께 준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스 개런티는 가령 5개월 이내 니트 상태의 청년에게 정부가 1년 동안 계속 접촉하면서 일자리를 알선하며 취업을 돕는다.

우리 정부도 지난 15일 1조원 규모의 ‘청년층 노동시장 유입 촉진방안’을 발표하며 ‘쉬었음 청년’ 지원에 나섰다. 재학시 조기 개입을 강화해 일을 경험할 기회를 확대하고, 재직 중에는 조직적응 프로그램을 도입해 상담 지원 강화하며, 구직시에는 ‘청년성장프로젝트’를 신설하고 ‘청년도전지원사업’을 개선한다는 내용이다. 취약청년을 위한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13억원) 도입, 가족돌봄청년자기돌봄비(연 200만원) 신설 등도 포함한다. 하지만 이런 ‘공급자 위주 제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혜진 강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취업지원제도(옛 취업성공패키지)와 같이 고용노동부가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는 학원 및 기관을 지정하기보다  수요자인 청년 본인이 원하는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바우처 형태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장기간 쉰 경우 구직의욕이 떨어지기 때문에, 신청을 받기보다 직접 찾아가 프로그램을 알려주고 챙겨주는 지자체 단위의 멘토링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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