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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낙엽이 초록색, 가슴 철렁했다…"이젠 단풍 사라질 것"

중앙일보

입력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지 못한 채 우수수 떨어져 있는 모습. 사진 박진희 배우 인스타그램,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페이스북 캡처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지 못한 채 우수수 떨어져 있는 모습. 사진 박진희 배우 인스타그램,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 페이스북 캡처

‘이제 은행나무 낙엽이 노란색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기후비상 #지구온난화 #초록낙엽.’
배우 박진희씨는 최근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푸른 은행나무 잎이 바닥에 가득 떨어진 사진과 함께였다. 지현영 녹색전환연구소 변호사도 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발견한 푸른 은행잎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그는 기후 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 문제를 언급하며 “며칠 전 파랗게 내려앉은 은행잎들을 보며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고 말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저명인사와 시민들이 잇따라 ‘푸른 은행 낙엽’에 안타까운 심경을 온라인에 올리면서 많은 시민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은행잎을 포함한 가을 단풍잎이 예전과 다르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다. 정해교 대전광역시 환경녹지국장은 2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전시 가로수 낙엽도 단풍이 들지 않고 떨어진 푸른 잎이 많다. 단풍이 예전 같지 않은 현상을 보고 녹지국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기후변화가 요인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센터장은 “단풍은 기상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나타나는 대표적인 자연 현상”이라며 “단풍은 기온이 일정하게 떨어지고 햇빛을 받아야 드는데 11월 초 갑자기 기온이 올라 단풍이 미처 물 들지 못한 채 말라버렸다, 이후 또다시 한파가 닥쳐 바람이 불면서 파랗게 마른 잎들이 우수수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낮 최고기온이 21~28도로 더운 날씨를 보인 2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가벼운 옷차림을 한 시민들의 모습. 뉴시스

낮 최고기온이 21~28도로 더운 날씨를 보인 2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가벼운 옷차림을 한 시민들의 모습. 뉴시스

단풍은 기온이 5도 이하로 떨어지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며 일사량이 높을 때 물든다. 매해 11월 ‘삼천리 금수강산’이 됐던 건 늦가을 날씨가 서늘하고 대체로 맑은 특징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11월은 날씨가 유달리 덥거나 춥고, 비도 많이 오는 등 평년보다 진폭이 컸다.

116년 만에 가장 높은 기온 기록한 서울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2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18.7도, 낮 최고 기온도 25.9도로 초여름 수준의 날씨를 보였다. 이는 11월 최고·최저 기온으로는 1907년 관측 이래 높은 수치였다. 이날을 전후로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평년보다 10~15도 높은 기온이 기록됐다. 대전은 최저기온 13.9도, 최고 26.3도, 광주와 대구는 최저 19도, 최고 27도 등을 기록했다. 평년보다 10~15도 높았다. 초여름 더위는 6일까지 이어지다 서서히 물러나더니 11일부터 중순까지는 최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맹추위가 다시 나타났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올 11월은 비도 잦았다. 11월 중순까지 우산을 써야 할 정도의 비가 온 날이 전국적으로 4~5일이었고,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은 11월 수능 사상 처음으로 영동 지방을 제외한 전국에 비가 내린 날로 기록됐다. 11월 비구름은 대체로 약했지만, 올해는 많은 비를 뿌리는 강한 비구름이 자주 형성되면서 우박 피해도 이어졌다. 우박이 내릴 정도의 강한 비구름은 대기 상하층의 온도 차가 클 때 형성된다. 이상 고온 현상으로 대기 하층 온도는 높고 대기 상층에는 북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주기적으로 내려오면서 맑았던 11월 날씨가 변덕스러워졌다.

단풍 물들 틈 없는 날씨…“예전 단풍 보기 어려울 듯”

반기성 센터장은 기후변화가 진행되면 예전 같은 단풍을 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반 센터장은 “기후변화의 특징인 극단적 기온 변화가 11월 한 달간 나타났다”며 “이런 조건에서는 단풍이 곱게 물들 틈 없이 마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파랗게 우수수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앞으로도 전처럼 예쁜 단풍을 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 은행나무수목원의 모습. 은행나무 단풍이 노랗게 물들던 중 최저기온이 5도 넘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전남 나주시 남평읍 은행나무수목원의 모습. 은행나무 단풍이 노랗게 물들던 중 최저기온이 5도 넘는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연합뉴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도 “일조량과 5도 이하의 낮은 기온이란 두 조건이 불일치하면 단풍나무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된다”며 “이미 해외에서 지구가 점점 가열되며 단풍의 색이 달라진다는 논문이 나왔는데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전과는 다른 단풍의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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