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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中 우회해 '대러 제재' 뚫어…반도체 장비 불법 수출 적발

중앙일보

입력

지난 13일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1

지난 13일 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스1

러시아 군수 관련 업체에 '수출통제' 대상인 반도체 장비를 불법 수출한 무역업자가 관세 당국에 붙잡혔다. 유령 회사를 만들어 중국에서 우회 거래하는 식으로 대(對)러 제재를 뚫은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정부에 따르면 서울세관은 상황허가 대상인 반도체 장비·부품 61대를 허가 없이 러시아로 수출한 업체 A·B와 해당 업체 대표인 C씨(60대)·D씨(30대)를 관세법 및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최근 검찰에 송치했다. 불법 수출한 품목 거래액은 약 17억원 규모다.

지난 4월 말 산업통상자원부는 러시아·벨라루스를 겨냥해 전략물자 수출입고시를 개정했다. 무기로 쓰일 가능성이 높은 첨단산업 물품 등 상황허가 대상 품목 798개를 지정한 게 핵심이다. 해당 품목은 원칙적으로 한국에서 두 나라로 수출하는 게 금지된 것이다. 지난해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 사회의 대 러시아·벨라루스 경제 제재에 협력하는 차원이다.

하지만 2018년부터 러시아와 거래해온 무역업자 C씨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불법 수출을 체계적으로 준비했다. 우선 러시아 업체와 공모해 중국 루트를 활용하기로 한 뒤, 자신이 대표로 있는 A사와 별도로 '페이퍼 컴퍼니' B사를 국내에 만들었다. 여기엔 자신과 인척 관계인 D씨를 대표로 앉혔다.

지난 5~9월 C씨는 세관의 감시를 피해 B사가 수출하는 것처럼 무역서류를 꾸며 중국으로 반도체 장비·부품을 보냈다. 이후 이들 제품은 중국에서 다시 수출돼 A사 측과 계약을 맺은 러시아 업체로 흘러 들어갔다. 불법 거래의 대가인 수출대금도 계약자인 러시아가 아닌 중국에서 받았다. 외형상 러시아와 전혀 관련 없는 정상적인 무역 거래로 위장한 것이다.

특히 C씨가 반도체 장비 등을 보낸 러시아 업체는 미국 정부의 '우려거래자'(List of Parties of Concern)에 등재된 회사로 나타났다. 러시아 군수 업체와도 거래하는 관계라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는 고위험 업체다.

서울세관은 상황허가 대상 물품이 중국을 통해 러시아로 수출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바로 수사에 나섰다. A사에 보관 중인 러시아 업체와의 계약 서류 등을 압수·분석하고 관련자 조사를 거쳐 혐의 사실을 최근 확인했다.

이번처럼 국내에서 대러 제재를 어기고 불법 수출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만 적발된 품목이 국가 안보에 매우 민감한 최첨단 제품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적인 대러 제재 공조가 중요한 만큼 러시아·벨라루스로 상황허가 대상 물품이 불법 수출되지 않도록 단속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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