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긴축 고삐가 느슨해지면서 내년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한국이 미국보다도 먼저 금리를 내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개발도상국 중앙은행들은 이미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서는 등 차별화된 행보를 드러냈다. 글로벌 금리 ‘동상이몽’에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2일(현지 시간)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짐 리드 도이체방크 투자전략가가 81개국 중앙은행을 분석한 결과, 11월 들어 금리를 내린 국가(5곳)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 국가(3곳)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가 역전된 건 2021년 1월 이후 3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 7월 금리를 내린 칠레에 이어 브라질ㆍ페루ㆍ 멕시코 등도 인하에 나섰다. 이 중 브라질과 멕시코는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올린 나라다.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유럽 중앙은행(ECB)은 금리 인하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이달 초 열린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기회의 의사록이 최근 공개됐지만 금리 인하에 대한 힌트는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전날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승리를 선언할 때가 아니다”라며 “인플레이션을 우리의 목표치까지 끌어내리는 데 집중해야 하며 단기적인 상황을 근거로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미국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각각 3.2%·2.9%로 하락했지만 식료품ㆍ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4%·4.2%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게 주된 근거다. 근원물가는 가격 변동성이 큰 항목을 제외한 만큼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잘 보여주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들이 예의주시하는 지표다. 하지만 시장은 내년 상반기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꺾지 않고 있다. 시카고 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는 내년 5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44%로 보고 있다. 3월부터 금리를 내릴 수 있다는 전망도 28%나 된다.
한국도 미국에 앞서 기준금리를 올린 만큼 물가가 2%대에 수렴한다는 확신이 생긴다면 먼저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을 거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8%로 9월(3.7%)보다 소폭 높아졌지만, 근원물가 상승률은 3.2%로 전월(3.3%)보다 낮아졌다. 주요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의 물가 목표 도달 시기가 2025년 상반기로 유로존(2025년 하반기), 미국(2026년)보다 최소 6개월 이상 빠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변수는 고삐 풀린 가계부채와 환율 변동성이다. 고금리 기조에도 올해 3분기 가계신용(가계대출+신용카드 등 외상거래)이 1875조6000억원으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늘어나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이지 않고 있는데다 금리 인하 시그널까지 더해질 경우 가계 빚이 걷잡을 수 없게 불어날 수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려서가 아니라, 한국이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내리면서 현재 2%포인트 수준인 한ㆍ미 금리 격차가 확대될 경우 그만큼 경기가 나쁘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급락하는 등 부작용이 클 수 있다. 한국은행은 오는 30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를 열고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에 대한 메시지를 내놓을 예정이다.
23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시장 현안 점검ㆍ소통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의 인플레이션이 둔화하는 등 통화정책 기조 전환의 여건은 갖추어져 가고 있으나, 각국 중앙은행들이 상당 기간 긴축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라며 “금리 인하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클 수 있는 만큼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37조원 규모의 금융시장 안정화 조치들을 내년 말까지 연장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