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술도 경영…관객에 먼저 다가가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04년 9월 어느날. 세종문화회관 사장직을 떠나 대학 출강 중일 때 성남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어요. 곧 출범하는 성남문화재단 상임이사로 선임됐다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이종덕(71) 성남아트센터 사장은 1935년생으로 당시 만 69세였다.
고희를 눈앞에 둔 그에게 공연장 운영 지휘봉이 다시 쥐어졌다. 예술경영 '일선'에 돌아온 것이다. 마지막 열정을 불사를 각오를 했다. 지난해 10월 성남아트센터가 개관하자 '파우스트' '마술피리' 등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고, 국내 초연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서울보다 먼저 성남 무대에 올렸다. 중소도시로서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러가지 할인제도를 운영하고 활발한 티켓 마케팅을 펼쳐 관객 유치에 나섰다. 그 결과 '객석점유율 90%, 1년 관객수 80만명, 서울 및 수도권 외지 관객 60%'라는 성과를 이뤘다.
이런 이 사장에게 성남문화재단 상임이사(이사장은 이대엽 성남시장)연임 결정이 떨어졌다.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성남아트센터를 개관 1년만에 국내서 손꼽히는 공연장으로 자리를 잡게 한 공로가 인정받은 것이다. 다음달 1일부터 새 임기 2년을 시작한다. "성남아트센터를 '더 크게 키워놓고 나가라'는 의미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양대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1995~98)과 세종문화회관(1999~2002) 사장을 모두 역임한 공연장 경영의 베테랑이다.
"예술도 경영이죠. 가만히 앉아서 관객을 기다려선 안됩니다. 예술이 관객에게 다가서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죠." 이 사장은 공연장이 관객 위에 군림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연장 시설을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리모델링했다. 예술의 전당 울퉁불퉁한 진입로를 하이힐 신은 여성도 걷기 편하도록 뜯어 고쳤다. 공연장 밖에선 각종 이벤트를 열어 시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이같은 그의 예술경영 철학은 성남아트센터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공연장을 좀더 시민들에게 가까이 다가서도록 하고 싶었다. 관객이 불편한 것은 모두 바꿔 나갔다. 성남아트센터는 지금 공사가 한창이다. 관객들 발길이 처음 닿는 곳에 종합안내소를 만들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즉시 해결해 주기 위함이다. 또 오페라하우스에서 콘서트홀로 가는 옥외계단은 비올 때 우산없이 갈 수 있도록 비가림시설을 연장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문화예술 행정으로 잔뼈가 굵었다.
1963년 문화공보부 주사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문화·예술·공연과 등에서 20여년간 무대예술과 관련된 행정을 맡았다. 그는 "인기높은 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유혹 많은 곳은 가지않은 게 좋다'는 사촌 매형(당시 문공부 차관)의 말에 무대예술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우리 문화예술을 외국에 알리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존슨 미대통령 등 국빈 방문때마다 전통공연 특별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였다. 1972년 4개월 동안 김소희·박귀희·이생강 씨 등 국악인들을 인솔해 세계 24개국 순회공연을 다녀왔다. 외국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 가수 김연자 씨 및 코리아나의 일본·유럽 진출을 돕기도 했다. 그 후에도 문화예술진흥원 상임이사 및 서울예술단 단장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을 만나 사귈 수 있었다. 이 사장은 "이 인맥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맥을 바탕으로 '예장로타리' '낭만파클럽' '광화문 문화포럼' 등 여러 문화인모임 창립의 산파역을 맡았다. 4월 창립된 성남의 '탄천문화포럼100인회'도 그가 설립을 주도했다.

지난달 성남아트센터후원회도 만들었다. 회장은 주돈식 전 정무장관, 고문은 이수성 전 총리가 맡았다. 성남에 살지않는 후원회원이 36명이나 된다. 성남아트센터가 짧은 기간에 유명 공연장이 된 것은 국내 정상급 예술인들을 성남 무대에 서게 하는 등 이 사장의 인맥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2년 전 자서전『내 삶은 무대 뒤에서 이루어졌다』를 출간했을 때는 저명인사 17명이 축하의 글을 실었다. 조경희 전 한국수필가협회장은 이 사장을 '문화예술계의 불도저'라고 불렀다. 그의 강한 추진력을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고 난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의 전당 노조 농성, 세종문화회관 민영화 갈등…. 그럴때마다 7년 전 구상 씨가 써준 시 '꽃자리'를 들춰보며 위안을 삼는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 너의 앉은 그 자리가 / 바로 꽃자리니라.'

프리미엄 조한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