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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 맞섰던 진주농민 이야기…17년이나 푹 빠져 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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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7년에 걸쳐 원고지 3만2000장(전 21권) 분량의 대하소설 『백성』을 펴낸 김동민 작가는 “고향인 진주의 이야기, 진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김동민

17년에 걸쳐 원고지 3만2000장(전 21권) 분량의 대하소설 『백성』을 펴낸 김동민 작가는 “고향인 진주의 이야기, 진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 김동민

10초 안에 승부를 보는 숏폼 콘텐트의 시대에 21권짜리 대하소설이 나왔다.  구한말 민초들의 삶을 담은 『백성』(문이당)이다. 박경리의 『토지』(전 20권)보다도 길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이 소설의 지은이는 68세의 소설가 김동민. 장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해 저물녘 티티새 1·2』 등을 낸 등단 작가지만 대중에게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김동민은 2006년 경남일보 연재를 계기로 『백성』을 쓰기 시작했다. 집필을 마무리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7년. 그렇게 단행본으로 21권, 200자 원고지 3만2000장 분량의 대하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조선 철종 때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 직전까지 민중의 역사가 담겼다.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미국·호주·프랑스인 등 40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야기의 무대는 경상도를 중심으로 서울과 부산·일본·만주·상하이·러시아를 넘나든다.

대하소설 『백성』.

대하소설 『백성』.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진주 농민항쟁(1862년)이다. 유계춘·이귀재 등이 가혹한 조세 제도에 항의하며 농민들과 반란을 일으켜 진주성을 점령했고, 그 영향으로 훗날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유계춘은 소설 속에선 유춘계로 나온다. 15초 동영상이 대세인 시대에 『토지』보다 긴 대하소설을 펴낸 초로의 작가를 지난 2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처음부터 대하소설로 기획했나.
“지역 어른들에게 옛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는데, 그중에서도 진주농민항쟁 이야기가 가장 재밌었다. 고향과 관련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자연스럽게 대하소설이 됐다.”
짧은 글도 안 읽히는 시대에 대하소설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다양한 인간 군상과 시대의 흐름을 표현하는 도구로 대하소설만 한 것이 없다. 짧게 치고 빠지면서 재미를 주는 이야기도 있고,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이야기도 있다. 독자들이 여러 가지 콘텐트를 다양하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창작 계기는.
“진주에는 머리 없는 무덤이라는 뜻의 ‘무두묘’가 있다. 복자 정찬문 안토니오(1822~1867)가 묻힌 자리다. 병인박해 때 진주 남강에서 참수당했고 후손들이 목 없는 시신을 묻었다. 그 자리가 아주 초라하다. 김대건 안드레아는 알아도, 정찬문 안토니오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나. 진주의 이야기, 진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어 소설을 썼다.”
17년간 소설을 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진주 남강을 걸었다. 남강 둔치를 따라가면 여러 바위가 나오는데, 어느 날은 그 바위가 소설 속 인물들로 보이더라. 그만큼 소설에 푹 빠져 살았다.”
대하소설인데도 담지 못해 아쉬운 내용이 있나.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 학교가 진주에 있다. 경남의 거부였던 정부인 김씨가 진주 보통학교(현 진주초교)에 여학생 전용 교실을 지어 기증하면서 남녀공학 교육이 시작됐다. 김 정부인은 국밥 장사로 번 돈으로 사람들을 도왔는데, 그 공로로 고종에게 정부인 봉작을 받았다. 그 얘기를 못해 아쉽다.”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다면.
“아침마다 꼭 내 소설을 읽고 출근한다는 맞벌이 부부가 있었다. 그분들에게는 소설 읽기가 일과인 거다. 독자들과 같이 간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차기작은.
“고향의 이야기를 충분히 했으니 다른 지역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발굴해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다. 단군왕검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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