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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북한·하마스 ‘돈세탁’ 인정한 바이낸스…5조원 벌금 내고 미국서 퇴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미국 정부가 제재하는 국가와 단체의 자금세탁을 도운 혐의를 인정했다.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된 바이낸스는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창업자인 자오 창펑 최고경영자(CEO)는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22일(현지시간) 자오 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자오 창펑 바이낸스 최고경영자(CEO)가 사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슨 일이야

21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는 바이낸스가 은행보안법(BS)과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 위반 등의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43억 달러(약 5조5000억원) 상당의 벌금을 내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바이낸스는 10만 건이 넘는 거래에서 아동 성적 학대, 불법 마약, 테러에 이르는 불법 행위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부 장관은 “바이낸스가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일부는 그동안 저지른 범죄 때문”이라며 “그 결과, 바이낸스는 미국 역사상 기업으로서 가장 큰 벌금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어떤 잘못을 했지 

바이낸스는 미국인을 고객으로 둔 암호화폐 거래소로서 재무부 산하 핀센(FinCEN‧금융범죄단속 네트워크)에 등록하고 자금세탁방지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바이낸스는 이를 따르지 않고 테러단체, 랜섬웨어 가해자, 자금세탁자 등 범죄자의 거래를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 하마스의 무장 조직인 알 카삼 여단,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 이라크와 시리아의 이슬람국가(ISIS)도 거래 대상 중에 포함됐다. 또한 바이낸스는 이란, 북한, 시리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등 제재 대상 지역에 있는 사용자와의 거래도 중개했다.

재무부는 바이낸스가 제재 대상 간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차단할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제재를 위반한 암호화폐 거래는 166만여건, 7억 달러 상당 규모다. 바이낸스는 미국 고객과 북한에 있는 사용자 간 암호화폐 거래 80건(총 437만 달러 상당·약 56억원)을 중개해 대북 제재도 위반했다.

바이낸스는 성명을 통해 “규정 준수 위반에 대한 회사의 책임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유죄 인정 합의 조건으로 바이낸스는43억 달러의 벌금을 내고, 미국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기로 했다. 앞으로 바이낸스는 핀센의 모니터링을 받고 제재를 준수하기로 약속했으며, 재무부가 5년간 바이낸스의 회계장부 등을 열람하도록 했다. 새로운 CEO로는 바이낸스 지역 시장 책임자였던 리처드 텅이 선임됐다.

이게 왜 중요해

미국 정부는 북한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제재하는 국가·단체가 가상화폐를 통해 무기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차단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가 사실상 효과를 보지 못하자 개별 국가 차원의 제재에 힘쓰고 있다.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바이낸스와의 이번 합의에 대해 “오늘과 내일의 가상화폐 산업 전체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미국 금융체계의 혜택을 받고 싶다면 테러리스트나 외국 적대 세력과 범죄로부터 안전하기 위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회복세를 보이던 가상자산 시장은 약세로 돌아섰다. 비트코인은 한때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출시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으로 3만7000달러대까지 올랐지만 바이낸스 사건의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가상자산 정보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22일 오후 6시 기준 비트코인 거래가는 3만6557.3달러로, 24시간 전과 비교하면 2.2% 하락했다. 바이낸스코인(BNB)의 거래 가격은 236.1달러로, 전날 같은 시간보다 9.3% 급락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한국에 미칠 영향은

바이낸스가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중동 지역에서 집중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바이낸스는 일본 현지 거래소를 인수하고 지난 8월 ‘바이낸스 재팬’ 영업을 재개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2월 국내 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를 인수하며 국내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변수는 금융당국이다. 고팍스가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제출한 가상자산사업자 변경신고서 수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로 인해 금융당국이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삼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석문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금융당국이 고팍스를 승인해 줄 수 없는 명분이 또 하나 생긴 셈”이라고 했다.

앞으로는

텅 신임 CEO가 바이낸스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텅 CEO는 싱가포르 거래소(SGX) 최고 규제 책임자, 아부다비 규제 당국자 출신. 그를 새로운 수장으로 내세운 건 바이낸스가 규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는 것도 과제다. 바이낸스는 올 초만 해도 전세계 가상자산 거래의 70%를 점유했지만, 지금은 40%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조재우 한성대 교수는 “불확실성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이 사태로 바이낸스가 휘청이면 실물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향후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