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신혼여행⑧인도네시아 발리
2019년 그해 여름을 발리에서 보냈다. 한 달 내내 삼시 세끼를 사 먹고, 객실 청소를 받으면서 이른바 ‘워케이션’을 즐겼다. 그리고 매일 객실로 마사지사를 불렀다. 출장 마사지라니, 뭔가 불건전한 이미지가 떠오르시나. 발리에서 출장 마사지는 중요한 ‘웰니스’ 관광 문화 중 하나다. 매일 하루의 끝, 객실에 누워 발리니즈 마사지를 받노라면 오늘도 참 건강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여행
발리에서는 매일이 여유로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습관처럼 체육관으로 향했고, 요가를 즐겼다. 체육관은 늘 외국인 반, 현지인 반이었는데 딱 우리가 한 달 동안 머문 사누르(Sanur)다웠다. 사누르는 발리 동남쪽에 위치한 동네로, 발리에서 맨 처음 관광지로 개발된 땅이다. 지금은 서쪽 해안의 꾸타(Kuta)‧스미냑(Seminyak)‧우붓(Ubud) 같은 인기 휴양지에 밀리는 신세지만, 여전히 사누르를 사랑하는 이도 많다. 발리의 행정‧경제 중심지인 덴파사르(Denpasar)와 가까운 데다, 집값이 저렴해서다.
한국에서 발리 한 달 살기를 꿈꾸며 매일 요가로 아침을 맞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내가 드나든 체육관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요가 수업을 진행했는데, 솔직히 첫인상은 실망이었다. 누가 봐도 헬스장에서 구색을 갖추려 만든 수업 같았다. 요가 선생님은 한눈에 봐도 환갑은 돼 보였다. 게다가 한국 요가원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배불뚝이였다. ‘종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몸매로 무슨 요가를 가르친단 말인가’ 싶어, 월 4만 원의 수강료가 아까울 정도였다.
그렇게 수업은 시작됐다. 요가 선생님은 새로 등록한 우리를 집중적으로 손봤는데, 시작하자마자 평생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힘을 느꼈다. 그저 양쪽 날개뼈를 살짝 들어 올렸을 뿐인데, 다리미에 옷 주름이 펴지듯 척추가 곧게 세워졌다. 아니, 이 마법 같은 손길은 뭐지, 불룩 나온 저 배가 삼손의 머리카락이었단 말인가. 그 뒤로 내 한 몸을 의심 없이 그분께 맡겼다.
오전 요가 수업 후에는 ‘와룽 크리스나’란 이름의 로컬 식당을 즐겨 찾았다. 우리 돈으로 2000원이면 인도네시아식 백반인 ‘나시 짬뿌르(NasiCampur)’나 볶음면인 ‘미고렝(MieGoreng)’을 사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발리에서 식당을 찾을 때 주의사항이 하나 있다. 에어컨이 있는 식당이 두 배 이상 비싼 값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더위에 약한 여행자는 대개 에어컨이 있는 식당부터 찾게 되지만, 더위에 익숙한 현지인은 에어컨이 없는 식당을 더 선호한다. 땀이 많은 종민은 매번 ‘에어컨!’을 외쳤지만, 나는 꿋꿋하게 현지식당으로 그를 끌고 갔다. 저렴해서만은 아니다. 개성 있는 지역 음식을 맛보려면 당연히 현지인들이 모이는 식당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이야말로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한 달 살기’의 본령이 아니던가.
김은덕 think-things@naver.com
남편의 여행
발리에 다녀온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이 어느 지역에 머물렀는지 밝힌다. ‘우붓에만 한 달 있었어’ ‘짱구(Canggu) 참 좋더라’는 식이다. 마치 제주도 다녀온 사람이 서귀포‧성산‧애월 등을 구분해 말하듯 말이다. 대충 ‘발리’라고 하나로 뭉뚱그리기엔 지역마다 개성이 확연히 다르다.
발리는 면적(약 5780㎢)만 놓고 봐도 제주도보다 3배가 크다. ‘같은 섬 맞나’ 싶을 정도로 지역에 따라 식생과 날씨의 차이가 크다. 발리 한 달 살기에 앞서, 지역 선정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다.
우선 서핑 입문자라면 꾸따나 스미냑에 숙소를 구하는 게 좋다. 일 년 내내 밀려오는 파도가 수많은 서퍼를 유혹하는 곳이다. 게다가 강습비도 저렴하다. 선베드에 누워 유유자적 머물기 좋은 비치 클럽도 많다. 친구 만들기를 좋아하는 ‘E성향(외향성)’에 밤새도록 놀 체력까지 된다면 이만한 장소가 없다.
반면 ‘I 성향(내향성)’들엔 우붓이 어울린다. 발리가 시끌벅적한 동남아 휴양지와 차별되는 점이 바로 이 조용한 시골 마을 때문이다. 해변을 등지고 섬 내부로 1시간가량 들어가면 하얀 파도 대신 싱그러움이 출렁대는 들판과 정글이 나타난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바라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 도시의 소음에 지친 이들이 힐링을 위해 찾아오는 우붓에선 명상‧요가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처럼 워케이션이 목적이라면 사누르가 제격이다. 한적한 분위기의 동네라 일에 집중하기 좋고, 식당과 마사지샵이 널려 있어 언제든 배를 채우고, 피로를 풀 수 있다. 당시 우리는 새 책을 쓰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 요가 후 카페에서 글을 쓰고, 해 질 녘 해변에서 여유를 즐기다 마사지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식으로 한 달을 보냈다. 한국 돈으로 단돈 6000원이면 전신 오일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발리를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대개 섬 남쪽 끄트머리의 꾸따‧누사두아(Nusadua) 그리고 우붓 정도만 보고 돌아온다. 그 큰 섬의 발끝만 누리고 온다는 게 아쉽지 않은가. 요즘 우리는 발리 지도를 펼쳐 놓고 더 깊숙한 내륙으로 들어가 보는 꿈을 꾸고 있다.
백종민 alejandrobaek@gmail.com
발리 한 달 살기 여행정보
비행시간 : 7시간(경유편이 직항편보다 약 30% 저렴함)
날씨 : 건기 추천(4~10월)
언어 : 인도네시아어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영어 통용)
물가 : 에어컨 유무에 따라 두 배 이상 차이 남
숙소 : 500달러 이상(수영장이 딸린 집 전체, 사누르 지역)
여행작가 부부 김은덕, 백종민
한시도 떨어질 줄 모르는 작가 부부이자 유튜버 부부. ‘한 달에 한 도시’씩 천천히 지구를 둘러보고, 그 경험의 조각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흔여섯 번의 한 달 살기 후 그 노하우를 담은 책 『여행 말고 한달살기』를 출간했다. 지은 책으로 『사랑한다면 왜』 『없어도 괜찮아』 『출근하지 않아도 단단한 하루를 보낸다』 등이 있다. 현재 미니멀 라이프 유튜브 ‘띵끄띵스’를 운영하며 ‘사지 않고 비우는 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