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체리와 땅콩이면 안 잊힐 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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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민정 시인

김민정 시인

입동 무렵 부고 문자가 연달아 날아왔다. 삼 일을 연이어 세 사람이 떠났다. 세상 안으로 온 바 있으니 세상 밖으로 가는 바 있음이 지극히 당연함을 알면서도 그때마다 익숙해지지 않는 다잡기가 누군가의 부음을 맞닥뜨렸을 때 순간 의자 다리 한쪽이 휘청대는 듯한 마음이다.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숭숭 바람이 드는데 도통 창문이 안 보이니까 깜깜도 하고 막막도 한 마음, 내 마음 어디선가 창문이 열렸으니 창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다는 얘기려니 이왕에 그는 바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간절히 기도하게 되는 마음.

생활의 발견

생활의 발견

그렇게 모은 두 손으로 영정 사진 앞 고인의 얼굴을 바라볼 적에, 특히나 그가 아주 가까웠던 사이라면 그 짧은 시간에 다들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되뇌는지 허심탄회하게 묻고 다닌 적 꽤 있었다. 이상하지, 두 눈을 꼭 감은 채 머리 숙여 인사를 할 적에 까만 크레용을 덧발라 칠한 도화지 한 장이 내 얼굴을 랩처럼 감싼 것처럼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나는 생각만 떠올랐으니 말이다.

퉁퉁 부은 눈으로 발인을 마치고 나왔을 때 유족이 말했다. “병원밥 먹기 싫다고 이거저거 다 싫다더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다고 사다 달라고 한 게 유일하게 체리 세 알이랑 땅콩 두 알이었어요. 왜 하필 그 둘을 얘기했는지, 그런데 왜 나는 그걸 꼭 말해주고 싶은 건지……”

민정아, 내 인생은 왜 구름 낀 볕뉘도 한 번 쬔 적이 없는 느낌일까. 생전의 그가 내게 한 말이 밟혀 하늘이나 쳐다보는데 구름은 높고 낮볕은 부셔 눈을 쉽게 뜰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전에 알던 체리와 땅콩이 내가 처음 알게 된 체리와 땅콩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체리와 땅콩을 먹을 수나 있으려나 하였는데 사람 참 잔인한 것이 나는 지금 우도 땅콩을 먹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거다. 어느 날 내가 울고 있을 적에 우연히 전화를 걸어온 김용택 시인이 해주신 말씀처럼 그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걸 거다.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