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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지키던 이태신…인간 정우성 모습 그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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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은 12·12 군사 반란군(황정민)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극 중 황정민과의 연기대결을 두고 “‘정우성이란 바다에 황정민이란 고래가 헤엄치는 느낌’이라 표현한 리뷰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은 12·12 군사 반란군(황정민)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그는 극 중 황정민과의 연기대결을 두고 “‘정우성이란 바다에 황정민이란 고래가 헤엄치는 느낌’이라 표현한 리뷰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진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 육군은 다 같은 편입니다.”

22일 개봉하는 영화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은 육군 내 사조직을 키우던 보안사령관 전두광(황정민)의 영입 권유를 이런 신념으로 단칼에 끊어낸다.

그는 군인 정신이 투철한 강직한 인물이다. 1979년 신군부 세력의 12·12 군사반란 실화가 토대인 영화에서 전두광 세력의 쿠데타에 끝까지 맞선다. 지난해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에 이어 정우성(50)이 또 다시 군부 독재에 맞서는 인물이 됐다. 청춘의 반항을 상징했던 정우성의 새로운 변주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이 가장 상상을 많이 보탠 인물이 바로 이태신이다. 배우 황정민의 전두광이 “활화산처럼” 정국을 뒤흔든다면, 이태신은 “깊은 호수 같고 선비 같은 지조”로 본분을 지킨다.

김 감독은 앞서 언론 시사 후 간담회에서 26년 지기 정우성이 실제 그런 성향이라고 캐스팅 이유를 밝히며 “이 사람, 참 멋있게 나이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김 감독의 데뷔작 ‘비트’(1997)부터 ‘태양은 없다’(2001), ‘무사’(2001), ‘아수라’(2016) 등 영화 5편을 함께했다.

정우성

정우성

21일 서울 북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우성은 “‘헌트’의 김정도가 대의명분에 자기를 ‘얹은’ 사람이라면, 이태신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면서 “대의명분은 맹목적이고 배타적일 수 있지만 이태신은 배타적이지 않다. 수도사령관으로서 직무의 정당성을 지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이 “이태신이 이랬으면 좋겠다”며 처음 보낸 사진은 정우성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인터뷰하던 모습이었단다. 정우성은 “난민의 삶을 전하는 인터뷰는 단어 하나 하나의 선택이 조심스럽다. 그런 신중함을 말씀하시는 거라 이해했다”고 했다.

극 중 이태신은 쿠데타 세력에 맞설 병력 지원 요청을 위해 동분서주한다. “계속해서 어딜 가는데 그 길이 어느 방향인지 모르는” 답답함이 연기하는 내내 정우성을 짓눌렀다. ‘전두광은 불, 이태신은 물’이란 연출 주문에 “가급적 차분함을 유지하고 감정을 억제했다”며 “상대 배역을 지켜보고 반응하는 데 집중하다 보니, 완성된 영화를 보고도 그런 기억 탓에 기가 빨리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황정민과의 연기 맞대결도 팽팽하다. 이태신이 혈혈단신으로 바리케이드를 뚫고 전두광에게 나아가는 장면이 한 예다. 폭주하던 전두광도 이태신의 투철한 사명감에 멈칫한다. 수십개의 바리케이드를 비틀대면서도 거침없이 넘는 이태신의 전진, 전두광의 홉뜬 눈동자가 교차한다. “가는 길이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는” 이태신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우성은 “비장하거나 멋있게 보여서는 안 됐다. 그냥 가는 거, (전두광을) 못 만날 수도 있지만 이태신은 가려고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상대 배우인 황정민과는 전작 ‘아수라’부터 형·동생 사이가 됐다. 정우성은 “정민 형은 ‘아수라’ 때 진짜 ‘형’으로 다가왔다. 표현이 즉각적이고 다혈질일 때도 있지만, 촬영에 집중하는 자세가 저와 잘 맞았다”고 했다. 이어 “‘서울의 봄’은 역할 때문인지 서로 말을 안 섞었다”면서 “전두광이 뿜어내는 기세에 눌리지 않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안 타 죽을까 고민했다”고 돌이켰다.

잇따라 현대사 소재 영화에 출연한 의미를 묻자 그는 “20~30대 때는 작품에 의미 부여를 크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중요하지 않더라”고 했다. “멋진 연기도, 멋을 의식하는 순간 멋이 다 날아간다. 그냥 감정에 충실하면 관객이 평가해주신다”면서다.

올해 유난히 바쁜 행보도 “오래 전부터 한 것과 그때 그때 제안 받은 작품이 합쳐지며 그렇게 됐다”고 소탈하게 말했다. 그의 모습은 ‘서울의 봄’ 뿐 아니라 감독 데뷔작 ‘보호자’, 코믹한 캐릭터로 카메오 출연한 ‘웅남이’ ‘달짝지근해: 7510’ ‘거미집’ 등 올해 개봉 영화 5편에서 볼 수 있다. 직접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까지 더하면 몇 년째 강행군이다. 주연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ENA)도 27일 첫 방영한다.

50대에 들어선 그는 “요즘은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진짜 쉬고 싶다”고도 했다. 스크린 데뷔작 ‘구미호’(1994) 이후 어느덧 연기 30년 차인 그는 “현장에 대한 설렘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다”면서 “아직도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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