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최후통첩'에도 북한 "위성 쏜다"…9·19 이득 대신 핵 능력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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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5월 31일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새발사장에서 쏜 첫 군사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실은 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을 발사하는 모습. 이 로켓은 엔진 고장으로 서해에 추락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을 접견한 이후 한 달 넘게 '잠행 모드'를 이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미뤘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일정을 통보하며 도발 구상을 공식화했다. 군이 '최후통첩' 성격의 대북 경고 메시지를 발신한 이튿날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9·19 남북군사합의(이하 9·19 합의) 효력 정지에 대해 "할 테면 해보라"는 반응을 내놓은 셈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정은이 9·19 합의로 누리고 있는 군사적인 이점을 내주더라도 숙원사업 중 하나인 군사정찰위성을 보유해 핵 능력 완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다는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의 이번 선택에는 오는 30일로 예정된 한국의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9·19 최후통첩'에도 마이웨이

NHK방송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해상보안청은 21일 북한이 "22일 0시부터 12월 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며 3곳의 위험구역을 설정하겠다는 계획을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북한이 통보한 위험구역은 지난 5월과 8월 위성 발사에 앞서 국제해사기구(IMO) 등에 통보한 것과 유사한 ▶북한 남서쪽 서해 해상 2곳 ▶필리핀 동쪽 태평양 해상 1곳 등이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후 취재진을 향해 들어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은 그간 남북 간의 각종 합의를 판판이 깨면서도 9·19 합의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는 9·19 합의가 그만큼 북한에게 군사적인 이점이 크다는 방증이다. 이에 우리 군은 지난 20일 "북한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우리 군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위성 발사 시 9·19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하겠다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공을 넘겨받은 김정은의 대답은 "마이웨이"인 셈이다.

국방부는 전례에 비춰볼 때 북한의 3차 위성 발사가 오는 22일 이른 새벽에 감행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1차 ·2차(발사) 때는 (예고 기간의) 첫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새벽에 발사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 가능성을 보고 있고, 또 기상 관계도 봐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올해 5월과 8월에 위성을 발사했을 때도 예고한 첫날인 5월 31일 오전 6시 29분과 8월 24일 오전 3시 50분 각각 발사 버튼을 눌렀다.

김정은 "득보다 실" 판단 이유는

김정은은 9·19 합의의 무력화로 인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대내외적으로 공언한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성공해 위신을 세우고, 핵·미사일 고도화라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평양에서 열린 8차 당대회 6일 차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21년 1월 평양에서 열린 8차 당대회 6일 차 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특히 정찰위성은 북한이 보유한 각종 미사일의 위협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국의 최신예 전략자산이 수시로 전개해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감시·정찰 능력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핵무기 운용에 필요한 지휘·통신체계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다.

또 연말 결산 기간을 앞두고 내세울 만한 성과가 절실한 김정은 입장에서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골몰해온 핵·미사일 개발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내부결속까지 확고하게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은 앞서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국방력 강화 5개년 계획의 5대 핵심 과제에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포함했다.

이에 더해 한국이 오는 30일 첫 군사정찰위성 발사 계획을 내놓은 것도 김정은의 경쟁 심리를 자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보다 선제적으로 위성을 쏘아 올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주도권을 북한이 쥐고 있는 것처럼 과시하는 한편 위성 발사로 포장한 도발을 하면서도 "한·미의 군사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자위권 차원의 정상적인 활동"이라는 억지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측면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지난 5월 16일 딸 주애와 함께 '비상설 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북한은 당시 정찰위성 1호기의 조립 상태 점검과 우주 환경시험이 끝났으며, 탑재 준비까지 완료됐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 위원장이지난 5월 16일 딸 주애와 함께 '비상설 위성발사준비위원회' 사업을 현지 지도하는 모습. 북한은 당시 정찰위성 1호기의 조립 상태 점검과 우주 환경시험이 끝났으며, 탑재 준비까지 완료됐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연합뉴스

실패로 끝난 1·2차 발사와 달리 북한이 위성을 궤도에 올린다면 러시아의 기술 지원에 도움을 받았을 것이란 국내외의 관측에 더욱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 9월) 정상회담 후에 러시아 기술진이 들어온 정황이 있다"며 "주로 엔진 계통의 지원을 받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美 "러 기술 이전 우려…행동 취할 것"

미국 국무부는 20일(현지시간) 북한이 일본 측에 위성 발사 계획을 통보한 것과 관련해 "북한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및 북·러 기술이전 가능성에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 이전 혹은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제공에 대해서도 우려한다"며 "이들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며 역내 동맹과 함께 북한의 안보 저해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는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나오지 않더라도 북한의 3차 위성 발사에 러시아의 기술이 제공된 것은 사실상 확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위성 개발과 발사에 관여한 기관·개인에 대한 제재를 연쇄적으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런 제재 역시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파급효과가 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추가 제재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비호로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미국의 핵(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예고 기간을 하루 앞둔 21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는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핵(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CVN)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예고 기간을 하루 앞둔 21일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편 미 해군 제1항모강습단의핵 추진 항공모함인 칼빈슨 함(CVN)이 이날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칼빈슨 함의 입항은 한·미가 사전에 협의한 사안이었지만, 입항 기간 내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가 이뤄질 경우 한·미의 강도 높은 연합 대응훈련이 이뤄질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 관계자도 전날 "(북한이 위성) 발사를 강행한다면 연계해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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