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 정부에 2028수능개편의 방향 재설정 촉구

중앙일보

입력

영어를 필요로 하는 기술혁신 글로벌 시대로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영어수업은 오히려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대변되는 영어격차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영어공교육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입평가방식의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 이에 2028수능개편을 앞두고 한국 영어 관련 31개 학회가 참여하는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영어는 글로벌 시장의 기본 언어이자, 수많은 국제기구에서 통용되는 유일한 공식 언어이다. 특히,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훨씬 더 자유로워진 4차 산업혁명의 글로벌 시대에 영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의 핵심인 AI 기술은 영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세계 각국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글로벌 의사소통 역량 향상을 위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더욱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및 우리 경제발전이 긴밀하게 관련되어있는 대외지향성을 감안한다면 미래의 혁신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가능케 하는 원활한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갖춘 인재양성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교육기업 EF(Education First)가 전 세계 112개 비영어권 국가의 성인 대상으로 조사한 2022년 EPI(English Proficiency Index, 영어 능력지수) 결과에서 한국은 36위에 머물러 있다. 싱가포르는 2위로 최상위권이었으며, 일본은 80위로 아시아 국가 중 최하위권이었다. 국가경쟁력이 영어 숙련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할 때, 우리의 국가경쟁력 제고의 방향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2022년 서울시 반일제 이상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은 2015년(224개)에 비해 138.8%(311개) 증가하였다. 이 중에서 특히 강남·서초, 강동·송파 지역이 전체의 45.0%(140곳)를 차지하였는데, 구별 인구수 대비 영어유치원의 수도 동대문, 중랑구 0.83개(10만명당)에 비해 강남 서초구는 8,99개(10만명당)로 약 10배 정도 많았다.

현 대입체제의 문제점이 왜곡 반영되면서 영어격차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영어교육정책은 무엇보다 교육 기회의 불평등 해소를 통해 양극화 극복 및 공정성 회복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무관하게 영어를 배우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에게 학교 공교육을 통해 언어학습에 요구되는 적절한 양과 질의 학습 기회가 주어져야한다.

이러한 영어공교육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학교 영어 수업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전국 단위 일반계 고등학교 2018학년도 입학생의 국어 선택과목(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의 총 수강인원이 1,546,465명이고 수학 선택과목(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의 총 수강인원이 1,421,619명인 반면, 영어 선택과목(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의 총 수강인원은 1,328,969명에 그쳤다. 국어 수강인원을 100%로 했을 때 수학 수강인원은 국어 수강인원의 92%인데 영어 수강인원은 국어 수강인원의 86%에 불과했다.

일반선택과목으로 범위를 좁히면 격차는 더 커진다. 전국 단위 일반계 고등학교 2018학년도 입학생의 국어와 수학의 일반선택과목 이수율이 각각 94%, 82%였는데, 유독 영어의 이수율은 75%에 그쳤다. 수학의 일반선택과목인 〈미적분〉은 이과에만 적용되는 과목이었는데 이를 문이과 공통과목으로 상정할 경우 국어와 비슷한 비율이 나왔을 것으로 추산된다. 특목고, 특성화고에서도 국어 영어 수학 세 개 영역의 일반선택 과목 중 영어 영역의 선택 이수율이 가장 낮았다.

서울 소재 일반고등학교에서 국어 영어 수학 중 실제로 수업이 없는 학교의 수는 1학기와 2학기 모두 영어가 가장 많았다. 1학기의 경우 국어가 32개교이고 수학이 16개교인 반면, 영어는 37개교였고, 2학기의 경우 국어가 32개교이고 수학이 13개교인 반면, 영어는 39개교에 달했다.

영어수업의 감소는 영어 교사 임용 비율에서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2022학년도 국어와 수학의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 임용 비율이 각각 72%, 69%로 감소했는데, 영어 교사 임용 비율만 48%로 대폭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의 상태에서도 국어 영어 수학으로 구성된 기초교과목군의 과목 간 불균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2015개정교육과정 적용 최초 입학생들의 선택현황이라는 점에서, 선택의 폭이 확대되는 추세를 감안할 때 향후 국어 수학과 영어의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하는 2022개정교육과정의 시행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격차를 만들어 낼 것으로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을 목도하며 과연 영어 공교육은 포기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교 영어교육 위기의 핵심에는 불공정한 수능평가방식이 자리 잡고 있다. 영어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국어, 수학과 함께 기초교과목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수능에서 영어에만 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수능평가 방식의 차이로 인해 학교 영어교육의 안정적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절대평가 시행 당시의 예상이나 지난 정부 대선공약과는 달리 국어 영어 수학 중 영어 수능만 계속 절대평가로 치러짐으로써 영어 경시 풍조가 널리 퍼지게 되고 고등학교 교육현장에서는 영어 선택 과목 감소가 심화되고 있다.

2018학년도 수능영어 절대평가 시행과 더불어 정시의 실제 영어 반영 비율이 급격히 하락하였다. 수능영어의 정시 반영비율이 타 영역에 비해 낮을 뿐 아니라, 다른 과목들은 표준점수가 소수점 이하까지 반영되면서 당락을 가르는 반면, 영어의 경우 90점 이상은 모두 1등급, 80점 이상은 모두 2등급 등 등급 간 점수 차이가 없고, 상위 등급 인원도 대폭 늘어남으로써 대입의 영어 변별력은 매우 저하되었다. 그 결과,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들의 영어 학습 동기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수능 절대평가는 학교 교육 정상화를 취지로 하면서도 기초과목군  과목 중 영어에만 적용됨으로써 국어와 수학 등 상대평가방식이 유지되는 과목들에 교육과정을 훨씬 벗어나는 높은 수준의 막대한 학습량이 쏠리는 반면, 대학신입생들이 원서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영어역량은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애초의 취지가 무색하게 기초학력의 불균형과 학교영어교육의 위축만을 낳고 있을 뿐이다.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는 그동안 상이한 대입평가방식에서 기인하는 영어공교육 위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영어 교육현장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고, 국가경쟁력과 영어격차에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는 당국에 아래사항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첫째, 수능영어 절대평가는 애초에 다른 과목들의 절대평가를 전제로 시범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절대평가 정착을 위한 계획이 제시되면서도 실제로는 오히려 정시가 확대되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되어왔다.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라는 이질적인 평가 결과를 합산하여 대입 당락을 결정하는 방식은 타당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교육과정상 동일 기초과목군인 국어, 영어, 수학에 동일한 대입평가방식을 적용하여 영어 공교육이 붕괴에 이르지 않게 하라.

둘째, 임시방편 절대평가 시행의 부작용을 영어에게만 떠넘기는 미봉책에서 벗어나 국어 영어 수학의 기초교과목군 더 나아가 모든 과목에 절대평가의 정신에 부응하는 제대로 된 준거참조평가를 적용하여 이름뿐인 절대평가 대신 신뢰성이 회복된 명실상부한 절대평가가 시행될 수 있게 하라.

셋째, 붕괴로 치닫는 영어공교육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 기초교과   목군 동일 대입평가방식의 원칙이 필수적이다. 기초교과목군에 균일하게 적용되는 절대평가의 전면적인 시행이 당장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에도 동일 기초교과목군 동일 대입평가방식의 원칙에 입각해 영어공교육 붕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