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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사회적 참사 진상규명, 왜 매번 실패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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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민후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특조위 참여 변호사

김민후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특조위 참여 변호사

대법원은 최근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 당시의 해경 지휘부에 사고 책임이 없다고 사건 발생 근 10년 만에 확정판결했다. 문제는 정작 선장이 퇴선 명령을 하지 않고 도망갔다는 것 말고는 해경이 뭘 해야 했는지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서울 이태원 압사 참사도 1년이 지났지만 누가 정확히 어떤 조처를 했어야 159명이 사망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상황을 답습할까.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 전체가 요동치고 시끄럽다. 집회 및 시위가 봇물 터지듯 하고, 대통령 탄핵 구호와 피켓은 광화문 길거리에 뿌려진다. 수사기관은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누군가를 구속하기 위해 혈안이 되고, 언론은 정신없이 물량 보도에 열중한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책임 불명
정치권의 이권 다툼으로 전락
관료조직은 사건 은폐에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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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야단법석 이후에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황당할 따름이다. 소중한 사회적 자산과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쏟은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복기할 필요가 있다. 온 사회를 뒤집어놓는 대형 인명 피해 사건의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가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걸 보는 것도 이젠 고통스럽다.

지혜로운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첫째, 참사와 슬픔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을 간파하고 당당히 배척해야 한다. 어린 생명의 죽음과 유가족의 피눈물이 다른 누군가의 이권창출이자 권력 쟁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방송에 출연해 사회운동의 일환인지 법적 판단인지 구분하기 힘든 주장을 하는 일부 율사들의 주장도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둘째, 진짜 책임자는 언론에 보이는 고관대작이나 유명인사가 아니라 관료조직 뒤에 조용히 숨어있는 누군가가 아닐지 의심해야 한다. 대통령 친구를 탄핵하겠다고 온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떠들썩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탄핵사유가 없다”고 결정했다.

이런 정치적 이권 다툼의 성격이 짙은 논쟁에 사회적 에너지가 소비되는 동안 정말 책임 있는 관료조직은 감시의 눈을 피해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기 바빴을 것이다. 여론의 불리함 때문에 조건반사적으로 강력히 대응하는 집권세력도 이들의 가장 큰 우군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하는 건 바로 이 조직 뒤에 숨은 관료주의다.

한 가지 더하면 필자가 지난 10년간 특별법에 따라 만든 조직인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뿐만 아니라 대한변협의 이태원 참사 특위에서 활동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참사의 진상 규명을 그 자체로서 당위로 받아들이고 목표로 삼는 사람보다 이를 구호로 이용하거나 조직 이기주의를 위해 활용하거나, 반대로 정치적 공격이라고 치부하고 반발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훨씬 더 컸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그동안 우리 사회는 그런 세력들에 휘둘렸다. 언론도 국민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참사에 누가 어떤 책임을 얼마나 져야 하는지, 참사의 원인은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함께 하기보다 박근혜를 지지하느냐 문재인을 지지하느냐, 윤석열을 지지하느냐 이재명을 지지하느냐의 정치적 기세 싸움에 휘둘렸다.

선거 승리와 논공행상을 위한 이권 다툼이 참사 진상규명을 집어삼켰다. 필자가 속했던 진상규명 조직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목소리 큰 사람들은 진실을 찾는 절차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자신들에게 필요한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이제 지혜로운 국민은 그런 세력들과 결별해야 한다. 어떤 구호가 내 가족의 생계나 우리 조직과 세력에 도움이 되냐를 먼저 따질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답인지를 찾고자 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시민과 피해자를 현혹하고 혹세무민하는 세력과 단호히 결별해야 한다. 공조직이 책임을 회피하고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신뢰를 되찾기 위한 자정 능력을 갖추는지 감시해야 한다. 누군가의 가슴 아픈 죽음을 평범하게 애도하고 아파하고 공감하는 다수의 국민이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라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목표에 다 같이 눈을 뜨게 될 때 더는 슬프지 않을 수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후 세월호 및 사회적 참사 특조위 참여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