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로봇 말고 사람’ 무인계산대 없앤 영국의 수퍼마켓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쇼핑카트를 밀고와 무인계산대에서 물건을 일일이 집계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 이제 지구촌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다. 계산대 앞에 선 종업원 수를 줄이고 공간도 절약할 수 있기에 갈수록 많은 수퍼마켓이 무인계산대를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도 영국의 한 중견 마켓 체인이 업계 최초로 무인계산대를 철수하고 직원이 직접 고객을 응대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겠다고 발표해 화제다.

시대를 거슬러가는 듯한 이 회사는 영국 서북부에서 27개의 고급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부스(Booths)다. 1847년에 첫 점포를 개설했는데, 최근 ‘Bods not bots(로봇 말고 사람)’ 홍보문구를 내세우며 관심을 끌고 있다. 고객들의 불만과 내부 평가를 종합해보니 무인계산대의 인건비 절감과 시간 단축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판단에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를 내세운 영국 부스 수퍼마켓. [부스 인스타그램 캡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직원들의 친절한 응대를 내세운 영국 부스 수퍼마켓. [부스 인스타그램 캡처]

고객이 물건 바코드를 잘못 스캔하거나 주류와 약품 등 구매자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 직원을 호출해 오류를 수정 또는 승인을 받는 과정이 적잖게 성가셔 정산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유튜브 등 SNS에는 이러한 불만을 호소하는 게시물이 가득하다. 아울러 물품 도난 사례도 골칫거리다.

반면 미국 수퍼마켓 아마존 고(Amazon Go)는 계산대조차 없다. 매장 내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와 스캐너가 고객이 쇼핑백에 담은 물품을 자동 집계해 등록된 지불 시스템으로 자동 결제한다. 쇼핑객들은 그냥 물건을 골라 담고 매장을 유유히 걸어 나가면 끝이다. 아마존 고와 비교하면 부스의 매장운영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업계 추세를 모를 리 없는 176년 역사의 이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결국 보다 더 나은 소비경험이라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응대할 때 제공되고 확대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고객 중에는 식료품 구매활동이 하루 중 유일하게 타인과 대화할 기회라고 증언한 사례도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영국은 ‘외로움 담당 장관’이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부스의 무인계산대 철수 방침이 타인과의 대면을 꺼리고 디지털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고객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결정일지 아니면 기술의 흐름을 역행해 실패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분명히 있다. 날로 늘고 있는 각종 키오스크 또는 무인화 시스템이 확산하는 디지털 환경을 버거워하거나, 신체가 자유롭지 않은 사회 구성원을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