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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고준위방폐물 관리 특별법, 골든타임 또 넘길 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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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의미하는 ‘골든타임’은 여러 사회적 참사를 거치며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골든타임 동안 우리는 사고가 잘 수습되길 한마음으로 바라지만, 골든타임을 넘기면서 그 바람은 실망과 분노로 바뀐다.

지금 국회는 고준위방폐물 관리의 원칙과 절차 등을 담은 특별법안을 심의 중이다. 전국단위로 실시된 두 번의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정파를 떠나 여·야 각각 법안을 2건씩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원전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부산물 관리부담을 미래세대에 전가하지 않기 위해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원전 소재 지자체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의 한시성을 보장하고 주민 의견수렴 의무를 규정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특히, 최근 한 국민 인식조사에서 91.8%가 고준위방폐물 저장·처분시설 확보가 시급하다고 응답했다는 사실은 대다수 국민도 특별법 제정의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2022년 11월 2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법안소위는 특별법안에 대한 첫 심의에 착수했다. 순탄하게만 보였던 법안 심의는 여러 쟁점으로 지체되었고 공교롭게 만 1년이 지난 오는 11월 22일 법안소위에서 열한 번째 심의가 진행된다고 한다. 그동안 여·야의 노력으로 쟁점은 대부분 해소되었고 단 2개의 핵심 쟁점만 남았다. ‘관리시설 확보 목표시점 명시 여부’와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의 최대 저장용량 설정기준’이다. 정치적 논리를 떠나 입법목적에 충실하면 합의가 불가능한 이슈는 아니지만, 내년 4월 총선과 5월 국회 회기만료로 이미 입법 동력을 잃었다는 비관적인 목소리가 들린다.

아직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지난 19~20대 국회도 임기 마지막 6개월간 100건이 넘는 법률제정안을 처리했다. 본회의 의결까지 남은 입법절차를 고려할 때, 이번 법안소위에서 남은 쟁점을 해소한다면 회기 내 특별법 제정은 아직 가능하다. 여·야 모두 나름 정치적 입장이 있겠지만, 이번 법안소위에서만큼은 초심으로 돌아가 치열하게 논의해 꼭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 만일 회기만료로 법안이 자동 폐기되었던 20대 국회의 뼈아픈 전철을 또 밟는다면, 앞으로 고준위방폐물 관리사업이 1990년 안면도와 2003년 부안 사태 같은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1978년 원자력발전 시작 후 45년이나 이어졌던 고준위 방폐물관리 입법불비의 고리를 끊어 소모적인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고 미래세대에 부당한 부담을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공은 국회에 있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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