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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부담 직접 낮춰야”…금융당국, 사실상 금리 인하 압박

중앙일보

입력

금융당국 수장이 주요 금융 지주 회장을 불러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금리 부담을 줄이라고 직접 요청했다. 자발적 사회공헌 형식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횡재세에 준하는 금리 인하를 요구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융사를 압박해 내놓는 포퓰리즘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이자 부담 직접 낮춰라”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왼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지주회장단 간담회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금융 지주회사 간담회’에 참석해 “금융회사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 최대한 범위에서 코로나 종료 이후 높아진 ‘이자 부담 증가분의 일정 수준’을 ‘직접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말했다. 방안 마련 시한도 올해 안으로 못 박았다.

이날 간담회는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권 ‘종노릇’ 발언 이후 금융당국 수장과 금융 지주 회장의 첫 대면 만남이었다. 김 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8대 금융 지주 회장(KB·신한·우리·하나·NH농협·BNK·DGB·JB) 등이 참석했다.

“금리 직접 인하, 캐시백 검토될 듯”

논의 초기인 만큼 지원 규모와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오진 않았다. 금융당국도 금융사의 자발적인 상생안을 요청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은 예상보다 구체적으로 지원 대상과 방법, 규모를 제시했다.

우선, 지원 대상은 “코로나 종료 후 이자 부담이 높아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로 한정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간담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어려운 분 많지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은 제일 먼저 신경 써야 할 취약계층 아닌가 하는 의미에서 (이들 지원을) 우선 했다”고 밝혔다.

지원 방법도 “금리부담을 일정수준 직접 낮춰줄 수 있는 체감할 수 있는 방안”으로 특정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기존 대출 금리를 낮추거나, 캐시백(이미 납부한 이자를 돌려주는) 형태로 지원하는 방법이 유력하게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직접적으로 금리를 낮추려면 고금리 일부 차주와는 대출 계약을 다시 맺는 방식으로 채무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규모는 최대 2조 횡재세 수준 가능성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관심 끈 지원 규모에 대해서는 횡재세를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으로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횡재세 관련 법안을 보면, 국회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재원 출연 규모)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지주사들이) 좀 감안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원장도 이날 회의 모두 발언에서 “‘횡재세’까지 거론될 정도로 여론 나빠진 상황인데, 업계 스스로 국민 기대 수준에 부합하는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이재명 대표가 서명한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은 금융사 초과이익의 최대 40%를 부담금 형태로 징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올해 은행들이 내야 하는 부담금은 최대 2조원에 달한다. 다만 횡재세 입법에 대해서는 김 위원장은 “유연하고 정교하게 대응해야 하는 금융산업에 국회 입법 형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이익 환원, 은행 비효율·부실화 키워”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 모습. 뉴스1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 모습. 뉴스1

정치권에 이어 정부까지 매를 들면서 향후 금융권에 부정적 영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금융사 이익이 잠시 늘었다는 이유로, 이를 환원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금융사들이 차후 더 많은 이익을 위한 혁신이나 경영 효율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은 위험을 피해서, 가급적 많은 대출을 해 이익을 얻는데 일정 수준 이상 돈을 벌 수 없다고 제한하면 적당히 신용도 높은 사람에게만 대출을 내어줄 것”이라고 했다.

또 향후 경기 상황이 나빠져, 이익이 급감했을 때 이에 대응할 자본력이 줄어 위험성을 키울 수도 있다. 실제 은행 이익은 최근 꺾이는 추세다. 20일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5조4000억원으로 전 분기(7조원)보다 23.9% 감소했다.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4분기 1.71%로 고점을 찍은 뒤 올해 3분기(1.63%)까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익이 줄어 은행권 배당 등의 감소로 이어지면, 외국인 투자가 줄고 은행주 주가에도 부정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의 독과점적 이익을 적절히 견제할 필요는 있지만, 횡재세 방식의 직접적 이익 환수는 은행 투자 환경을 더 좋지 않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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